《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가 실제 소비되는 실물경제 중 주택시장은 소비자가 가격 하락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
집값이 크게 내리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산 가계가 자금난을 겪을 뿐 아니라 대출 부실로 경제 위기가 심해질 수도 있다. 악순환 고리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집값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난 26일, 30대 중후반인 가장(家長) 세 명이 모였다. 자영업을 하는 윤성원(이하 가명·35) 씨, 광고회사에 다니는 홍정수(38) 씨, 금융회사에 다니는 최수환(37) 씨가 이날 나눈 대화의 소재는 집값.
집 없는 사람은 언제 사야할지를, 집 있는 사람은 가격이 얼마나 떨어질지를 몰라 답답해했다.
집값과 관련한 한국 중산층의 고민과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1 집값 더 떨어질 듯
윤 씨는 집을 사려는 쪽이다. 지금은 경기 고양시 D아파트 89m²형에 전세로 산다. 지난달 집주인이 2억8000만 원에 사라고 제의했지만 ‘더 빠질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다.
최근 국민은행이 내놓은 전국 아파트 매매가 추이에 따르면 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직전 주보다 0.2%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서울 강남(―0.3%)과 강북(―0.1%)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동반 하락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강남이 떨어지면 강북은 올라 전체 집값이 대체로 횡보하던 형태의 가격 추세가 전반적인 하락기조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윤 씨는 이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집값이 바닥에 가까워질 때를 더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실제 지금은 거래가 별로 없어 집값 하락 폭이 크지 않지만 대출 부담을 견디지 못한 매물이 터져 나오면 가격 폭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년 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상해 주목받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집값이 15% 더 떨어져 금융권 손실이 3조 달러 가까이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주택시장이 미국과 동조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흘려들을 수 없는 경고”라고 본다. 이들은 △주택담보대출이 8월 말 현재 233조 원에 이르는 등 과도한 편이고 △주택 투자수익률이 하락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호주 중국 등지의 주택경기 부진이 국내로 확산되는 조짐에 주목하며 집값 폭락설을 주장한다.
또 경매시장에서 아파트 감정가 대비 낙찰가격 비율(낙찰가율)이 하락하는 것도 집값이 계속 하락할 것이란 분석의 근거로 들고 있다.
경매정보업체 태인에 따르면 올 1∼9월 서울 송파구 아파트의 평균 낙찰가율은 78.9%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3%포인트 하락했다. 강남구와 서초구의 낙찰가율은 3%포인트 이상 낮은 80%대였고,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와 용인시는 70%대 중반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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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 가진 자의 고민
서울 마포구에 사는 홍 씨는 윤 씨와는 의견이 좀 달랐다.
홍 씨는 2005년 말 서울 강남구 S아파트 102m²형을 6억5000만 원에 샀다. 전세 3억2000만 원을 내는 세입자가 있는 상태에서 대출 1억8000만 원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이자를 내기 힘들어 최근 집을 내놨다.
“매물이 많은 지금이 집 살 기회가 아닌가요? 정작 집값이 바닥을 치고 오를 때는 매물이 다 들어가서 주거환경이 좋은 집을 못 구합니다. ‘내 집’을 사겠다는 실수요자라면 왜 주저하는지 모르겠어요.”
집을 팔아야 하는 개인적 상황 때문에 ‘주택 수요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뉘앙스였다.
이런 홍 씨가 솔깃해할 만한 의견을 가진 전문가도 많다. 건설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는 교수들 중 상당수가 집값이 연착륙하거나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대체로 △공급이 여전히 부족하고 △외국에 비해 시장 상황이 안정적인 편인 데다 △한국인의 주택 소유 욕구가 강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주택건설 물량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1만 채에서 2002년 67만 채로 급증했다가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50만 채에 못 미쳤다. 지난해 56만 채로 회복됐지만 수도권 공급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
이런 공급 부족 탓에 전국 주택보급률이 지난해 기준 99.3%에 머물렀다. 미국(108.5%), 영국(105.2%), 일본(114.3%)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인은 ‘내 명의로 된 집’을 갖길 원하는 성향이 외국인에 비해 강한데 2005년 기준 한국인의 자가 주택 보유율은 60%로 미국(68.3%)이나 영국(69.8%)보다 크게 낮다. 잠재적인 주택 수요가 많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3 주택시장보다 세계 금융흐름에 주목해야
최근 외국계 은행에서 증권사로 이직한 최 씨는 “집값 추세라는 게 믿을 만하지 않다. 숲(전체 주택시장)을 보지 말고 나무(개별 주택)를 봐야 한다”는 좀 색다른 의견을 냈다.
증시의 코스피지수는 공개된 시장에서 실제 이뤄지는 거래가를 종합한 것인 만큼 추세의 의미가 있지만 집값 통계는 호가(呼價) 위주의 가격을 주관적 판단에 따라 산정한 것이어서 추세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따라서 개별 주택의 장단점과 가격조건에 따라 매매 여부를 판단해야지 가격 추세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으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일면 옳다. 다만 주택시장보다 더 큰 숲인 세계 금융시장 동향을 주시해야 한다. 주택 수요자의 구매심리에 직접 영향을 줄 변수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관점에서 △금융시장이 안정되는 시점에 △빚을 최소화하면서 △실제 입주할 지역에서 협상이 가능한 급매물을 매입하는 전략은 언제나 유효하다고 본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어떤 전문가라도 현 상황에서 매도자나 매수자에게 획일적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다”며 “각 개인의 경제적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 매매하는 ‘자기 책임 투자’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