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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 대상 유영숙 박사

입력 | 2008-10-31 02:58:00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화학과 생물학을 연결하는 연구를 했다. 이제는 유전자와 단백질을 ‘통합’하는 연구를 한다. 과학계에서 여성과 남성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역할도 도맡는다.

유영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과학연구본부장의 연구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융합’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29일 ‘제3회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 과학대상을 받은 유 본부장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KIST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본보 29일자 A24면 참조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 대상에 유영숙 씨

“1990년 KIST 도핑컨트롤센터에서 처음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죠. 운동선수의 몸에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금지약물이 있다면 찾아내야 했어요. 화학의 분석기술을 생물학에 활용했죠. 지금은 미량의 생체물질 100여 가지를 한 번에 측정할 수 있게 됐어요.”

이 기술은 요즘 생명과학계의 화두인 ‘시스템 생물학’의 기반이 된다. 시스템 생물학은 유전자와 단백질 등 생체물질의 활동을 연결해 생물체의 생명현상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다.

“이제야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유 본부장은 이미 국제학술지 ‘일렉트로포레시스’에 시스템 생물학 관련 리뷰 논문을 두 번 발표했다. 보통 이런 논문은 학술지 편집진이 해당 분야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권위자에게 요청한다.

요즘 유 본부장은 새로운 융합을 시작하고 있다.

“바로 ‘테라그노시스(Theragnosis)’입니다.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영어단어를 합한 신조어예요. 형광물질로 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여기에 약물을 붙여 동시에 치료도 하는 거죠. 장차 개인별 맞춤의학 시대에 꼭 필요한 기술이 될 겁니다.”

유 본부장의 첫인상은 참 여성스럽다. 7남매 중 막내답게 집안에서는 애교도 많다. 그런 그가 KIST 설립 40여 년 만에 첫 여성 센터장을 거쳐 첫 여성 본부장이 됐다.

“2004년 센터장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처음엔 사양했어요. 솔직히 두려움이 앞섰죠.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꿨어요. 여자 후배들에게 리더가 되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거든요.”

유 본부장은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실험과 육아를 병행하다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악몽도 여러 번 꿨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도 모르는 새에 ‘가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리더가 됐다. 아이 문제로 고민하는 여성 연구원에게 ‘연구실을 지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한테 중요한 일이 있는데 말도 못 하고 끙끙 앓는 후배들이 있어요. 그럴 땐 하던 일은 동료에게 맡기고 집으로 보내요. 그러면 대부분 신바람이 나서 일을 더 잘하죠.”

그는 “아들을 대신 키워주신 어머니 덕분에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나는 행운아”라며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여성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면 그만큼 과학의 발전도 더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도 사실 유 본부장 못지않은 열정을 보여줬던 한 여성에게서 비롯됐다. 태평양그룹 창업주 고 서성환 회장의 어머니 윤독정(사진) 여사다.

윤 여사는 1932년부터 독자적인 기술로 동백기름을 정제해 만들고, 동백꽃잎을 이용한 연료와 매염제(媒染劑)까지 생산한 실험정신의 소유자였다. 그의 열정적인 활동을 기려 여성 과학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이 상을 제정했다는 것이 아모레퍼시픽 측의 설명이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유영숙 본부장은

1955년 5월 강원 원주 출생

1977년 2월 이화여대 화학과 졸업

1986년 9월 미국 오리건주립대 생화학 박사 취득

1986년 10월∼1989년 2월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

1990년 4월∼ 1997년 7월 KIST 도핑컨트롤센터 선임 및 책임연구원

1997년 8월∼ KIST 생체대사연구센터 책임연구원

1998년 3월∼ 고려대 객원교수

2000년 1월∼ 과학기술부 뇌연구촉진심의회 심의위원

2001년 8월∼ 한국기술벤처재단 전문위원

2006년 1월∼2007년 12월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