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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50년 NBA 첫 흑인선수 출전

입력 | 2008-10-31 02:58:00


‘백인과 흑인은 같은 거리를 걷는다. 하지만 거리와 상수도와 하수도만이 그들이 공유하는 공공시설이다. 야구장과 택시는 분리돼 있다.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검은 토끼와 흰 토끼가 함께 나오는 책도 금지됐다.’

뉴욕타임스 1960년 4월 12일자 1면 기사가 전하는 앨라배마 주 버밍햄의 분위기이다. 정부와 민권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음을 보여준다.

얼 로이드는 이보다 10년 전인 1950년 10월 31일 워싱턴 캐피털스의 시즌 개막전에 나섰다.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 명단을 소개하자 맨 앞줄에 앉은 백인 관중이 “이런 깜둥이가 농구라는 걸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바로 뒤에 앉아 있던 로이드의 어머니는 그 관중에게 걱정 말라면서 말했다. “깜둥이도 경기를 할 수 있거든요.”

로이드는 이처럼 흑인이 모든 분야에서 무시 또는 외면당하던 시대에 미국프로농구(NBA) 무대에 올랐다.

그는 1928년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 농구팀의 스타가 됐는데 1947∼48 시즌에 이 팀은 미국 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NBA에서는 로이드 외에 2명의 흑인선수를 더 지명했다. 보스턴 셀틱스의 척 쿠퍼와 뉴욕 닉스의 냇 클리프턴. 두 팀이 11월까지 개막전을 시작하지 않아 로이드가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NBA 코트에 나섰다.

로이드는 캐피털스에서 7경기를 뛰고 군에 소집돼 한국에서 2년간 근무했다. 미국에 돌아왔을 때 팀이 해체돼 시러큐스 내셔널스(나중에 필라델피아 76ers)로 옮겼다.

내셔널스 선수이던 1955년이 전성기였다. 게임당 평균 득점 10.2, 평균 리바운드 7.7을 기록하며 NBA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에서 1960년 은퇴할 때까지 9개 시즌, 560여 경기를 뛰었다.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1970년 피스턴스의 수석코치로 임용됐다.

2003년에 농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랐다. 지난해 12월 1일에는 고향인 알렉산드리아의 고등학교가 그의 이름을 붙인 농구코트를 만들었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