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골마을에 있는 축산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외양간의 두엄더미 위로 이마를 곤두박이고 말았지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 곧장 네 다리를 딛고 일어섰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송아지라 불렀고, 그 이후부터 어미 소를 따라 세상 구경을 다녔습니다.
세상 구경이라지만 논두렁과 밭두렁 길을 오가는 어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기회 있을 때마다 젖을 훔치는 정도였습니다. 어미 소는 어떤 경우라도 나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너그럽게 허락하였지만, 주인이 항상 어미 소와 나 사이에 파고들어 게걸스럽게 젖을 빨려는 나를 회초리로 후려치며 가시 돋친 욕설로 내쫓곤 하였습니다.
사래 긴 밭 갈기, 모심기 전에 써레질하기, 비료포대 나르기, 논밭에 거름내기 같은 중노동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시달림을 받고 있는 어미 소의 젖을 훔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노동의 과부하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어미 소는 그래도 뜸베질 한 번 하는 법이 없이 소름끼칠 정도로 변덕스럽고 살기 띤 주인의 노동착취를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인의 횡포는 드디어 나를 겨냥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은 발버둥치는 나를 단박에 제압하고 코뚜레로 내 코를 꿰고 말았습니다. 주인은 나를 끌고 장터로 나갔고 나에게는 한마디 위로나 양해도 없이 멀리서 찾아온 새로운 주인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새로운 주인의 집은 어미 소와 함께하였던 마을과는 80km 이상 떨어진 멀고 먼 고장이었습니다.
나는 새로운 주인을 만난 그 이튿날부터 어미 소가 겪었던 것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나를 만났다 하면 언제나 매질이었고 욕설이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잠시 그늘에서 쉴 시간이 생겨 조용히 되새김질이라도 하고 있으려면 쇠파리가 달려들어 내 코와 이마를 마구잡이로 쪼아댔습니다. 엉덩짝에 달려들어 꼬집는 파리는 꼬리를 쳐서 내쫓을 수 있지만, 그 길이가 미치지 못하는 이마와 콧등은 쇠파리가 내키는 대로 물어뜯어도 도무지 뿌리칠 방법이 없지요.
밤에는 쇠파리와 모기 그리고 낮에는 중노동 생활 10여 년을 지난 끝에 나는 일찌감치 예상했듯이 어느 날, 또다시 도회지로 가는 트럭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의 변두리에서 순식간에 도축되고 말았습니다. 살아생전 주인의 가혹한 매질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던 내 엉덩이 부분의 살코기는 도심에 있는 식당으로 배달되었습니다. 고객은 내 살코기를 임플란트로 강화시킨 이빨로 질겅질겅 씹으면서 거듭거듭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놈의 쇠고기 왜 이렇게 질겨.”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