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원형(36·사진)에게 지난해 가을은 무척 특별했습니다.
데뷔 17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이란 걸 해봤거든요. 그의 죽마고우인 박경완은 우승 헹가래가 끝난 직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엔 얼떨떨해서 실감이 잘 안 났어요. 그런데 원형이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아서….”
김원형도 그랬습니다. 만년 꼴찌팀 쌍방울에서 야구를 해온 그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벅찬 감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아쉽기도 했습니다. 정작 한국시리즈에서 공 한 개도 던지지 못했거든요.
올해도 그는 마운드 한번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한국시리즈 성적은 여전히 2003년이 마지막입니다.
“사실 작년에는 마음을 비우고 나섰어요. 시즌 때 잘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땐 우승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커서, 내가 안 나가도 이기면 그만이었어요. 덕아웃에서 가장 크게 ‘파이팅’을 외친 것도 그래서예요.”
그래도 이번엔 상황이 다릅니다. 그는 올해 74.1이닝을 던졌고, 12승을 올렸습니다. 선발진에 구멍이 나면 선발로, 불펜에 부하가 걸리면 불펜으로 나섰습니다. 팀이 연장전에 돌입할 때면 어김없이 후반부에 등장했습니다. 주변에서 ‘노익장’이라고 놀려도 내심 뿌듯했던 시즌입니다.
“이번엔 준비 기간이 길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몸 관리도 하고 컨디션도 조절했어요. 혹시 지는 경기라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는 멋쩍게 웃어버립니다. 하지만 ‘김원형 타임’은 좀처럼 오지 않더랍니다. “불펜에 오래 있다보면 타이밍을 알게 돼요. 내가 나갈 타이밍, 못 나갈 타이밍. 내가 나갈 수 없었다는 게 납득이 되니 어쩔 수 없죠.”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르는 건 후배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농담으로 응수했답니다. “얘들아, 나 나갈 수 있게 점수 차 좀 7점 이상으로 벌려줘.”
그도 한 때는 주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위 팀 SK의 수많은 조연 중 하나입니다. “나이 든다는 게 그런 것 같아요. 한 살, 한 살 먹다보면 자존심에 연연하지 않고 내 역할에 충실하는 법을 배워요. 진짜 가치있는 게 뭔지도 알게 되고요.” 쌍방울 시절 홀로 빛났던 그는 이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맛 볼 수 있는 지금도 참 행복하다”며 웃습니다. 그리고 힘주어 말합니다. “작년도, 올해도, 우리 정말 고생 많이 했거든요. 우리는 진짜 100% 우승할 자격이 있어요.”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인 ‘어린왕자’의 눈동자에 그 순간 생기가 감돌았습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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