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을 막기 위한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올해로 시행 10주년을 맞았다. 가정 폭력이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범죄라는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냈지만 한국의 가정폭력 발생률은 여전히 50.4%에 달한다.
특히 취업난으로 노동 시장 진입이 좌절된 20대 부부 사이에서 가정 폭력 발생 빈도가 늘어나 경제적 고통이 폭력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고 있다.
● 대부분 경제적 갈등에서 기인
20대 부부 사이에서 가정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은 30~40대 부부처럼 가부장적인 부부 관계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인 경우가 잦다.
결혼 한 지 1년이 된 20대 남성 A씨는 평소 귀가 시간이 늦고 술만 늘어가는 아내와 이혼 준비 중이다. 욕설이 오갈 정도로 부부 갈등이 커진 이유는 아내의 카드 빚. 아내가 수백만 원 카드 빚을 졌지만 먹고 살기도 빠듯해서 갚아 줄 수 없었다. 아내는 죽고 싶다고 유언장까지 남기는 등 부부 생활을 유지하기가 버겁기만 하다.
결혼 이후 집을 구할 형편이 안 되어 시부모를 모시고 살던 20대 여성 B씨.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 했던 남편은 걸핏하면 만취해서 폭력을 휘둘렀다. 게다가 남편이 시부모에게도 행패를 부려 쫓겨나는 바람에 현재는 친정에서 살고 있다. B씨는 한 푼 두 푼 모아둔 300만원을 내 놓으라며 남편이 친정 식구들에게까지 협박을 일삼자 이혼 상담을 받게 되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다른 연령층과 달리 20대 부부간 가정폭력은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대부분 남편이 무직이거나 자주 이직을 해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 20대 가정 폭력 가해자 12.6% 증가
경찰청의 '가정폭력 신고(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가해자 수는 2005년 1만 2775명, 2006년 1만 2837명, 2007년 1만 3165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20대 가해자는 2005년 803명, 2006년 850명, 2007년 904명으로 3년간 12.6% 증가했다. 과거 주요 가해자였던 30~40대 비중이 줄어든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이 같은 사실은 20대에서 '가정폭력'으로 인한 상담이 계속 증가했다는 사실과도 일치한다. 한국 가정법률 상담소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으로 인한 상담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5년 26.2%, 2006년 38.0%, 2007년 41.2%로 급증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미혜 연구위원은 "20대는 취업 시기가 점차 늦어져 경제적인 불안정상태에 있지만 한 자녀나 두 자녀 가정에서 자라나 자립심과 배려심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러한 세대적인 특징이 20대 부부의 가정폭력이 늘어나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진단했다.
서울대 곽금주 심리학과 교수는 "실업 상태가 계속되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억압된 분노가 폭력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며 "자기 분노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20대에서 외부에 대한 공격성이 쉽게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