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군사회담, 16일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 27일 군사실무자 접촉, 그리고 28일 군사회담 대변인의 대남 입장 발표 등 북한의 대남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남북관계 전면 중단으로 가는 수순인지, 정부의 대북정책을 변화시켜 달라는 요구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아마 둘 다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가 협박에 굴복해서 북한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좋고, 그렇지 않다면 북한이 말한 대로 개성이나 금강산에 있는 우리 측 인원을 모두 추방함으로써 남북관계 전면 중단의 빌미를 우리가 제공했다는 식으로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의도가 아닐까 한다. 북한이 늘 보였던 압박전술이다.
북한이 공세적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과거 10년 동안의 포용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포용정책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한국 내부에서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좋은 놈과 나쁜 놈’을 구분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했다. 포용을 통해서 북한을 변화시키겠다고 했지만 정작 변화된 것은 한국 사회와 한국의 동맹관계였다고 말하면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북한이 겨냥하는 대상은 ‘나쁜 놈’이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을 구분하고 분열을 심화시키면서 결국 나쁜 놈이 굴복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야말로 자기중심적 사고의 전형이다. 정작 바뀌어야 하는 것은 북한의 이런 사고방식이다.
북한의 복심(腹心)을 읽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먼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북한과 우리 모두에게 바람직한 점이 뭔지를 생각하는 일이 순서다. 단순하게 말하면 포용정책은 북한이 원하는 것을 주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자는 의도였고,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남북 간 교류의 양적 증대로 남북관계가 질적으로 발전했다고 착각할 만하다. 그런데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그대로다. 현 정부가 ‘비핵·개방 3000’을 추구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지 않아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미온적으로 인정해서,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에 따라 급변사태 운운해서 북한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가. 북한이 정부의 이런 태도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그렇다고 정권 교체에 따른 대북정책의 조정을 두고 관계 단절을 협박하고 나선 태도는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핵심적인 덕목은 ‘배짱’과 ‘도리’이다. 배짱은 자존심과 신중함이 있어야 가능하다. 북한의 협박과 공갈에 흔들리지 않는 자세와 남북관계에서 당장의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조급해 하지 않는 자세는 배짱이 있어야 나올 수 있다. 어차피 대북정책은 즉각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가져다주기 어렵다. 북핵 문제도 그리 쉽게 풀릴 사안이 아니다.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상생과 공영을 목표로 한다면 그 길은 더더욱 길고 험난할 수밖에 없다.
도리는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며, 북한 주민이 인권이나 생존의 문제에서 고통을 당한다는 점을 깊이 고려함을 의미한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통해 어느 일방이 아니라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하려는 의지와 북한 주민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향상시키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인도적인 차원의 고민이 있어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북한의 인식과 태도가 변해야 한다. 관계라는 것이 한쪽만의 원맨쇼로 개선될 수 없다. 금강산 사건이 좋은 사례다. 이 사건을 풀려는 북한의 노력이 없이는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의 싸늘한 시선을 거두어들이기 어렵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왜 남북관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지 답답함을 지울 수 없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