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수정(19) 씨는 책을 읽을 때 산만해서 오래 읽지 못한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어 교대에 입학했으나 ‘책을 잘 읽지 못하는데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때 교사의 꿈을 포기할 생각도 했다.
이 학생의 증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문장을 읽다가 줄이 바뀌면 어디까지 읽었는지 헷갈려서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읽었다. 작은 글씨의 책을 읽을 때는 어지럼증을 느껴서 확대복사를 해서 읽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다 보니 읽고 난 후에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고, 책만 읽으면 눈이 피로해서 잠이 오곤 했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한 글자씩 손으로 짚어 가며 책을 읽는 친구가 있었다. 문장 아래에 자를 대고 읽는 친구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읽는 속도가 느리고 글에 대한 이해도가 저조했다.
긴 문장을 읽으면 문장 끝부분을 읽을 때 첫 부분을 잊어버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는 이런 아이에게 읽기 습관이 나쁘다고 야단을 친다. 글을 읽을 때는 30cm의 거리를 두고 읽으라고 교정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아이를 자세히 보면 ‘시각적 난독증(難讀症)’인 경우가 많다.
시각적 난독증은 △눈 운동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시야가 좁아 문장의 뒷부분을 읽을 때 처음 부분을 잊어버려 이해력이 부족하고 △시각 정보가 뇌에서 처리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 특정 색상에 광과민성을 보이는 ‘얼렌증후군’일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읽기 습관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려움을 나름대로 보상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학생은 검사 결과 얼렌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그는 광과민성을 유발하는 색상을 차단하는 필터 렌즈를 착용한 후 읽기 능력이 개선돼 교사의 꿈을 버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 중에는 처음부터 공부하기 싫어했다기보다 나름대로 노력을 해 보았으나 뜻대로 안돼 싫어지게 된 경우가 많다. 난독증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부모가 정확한 원인을 모른 채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만 하면 아이는 자존감이 떨어져 자신을 ‘게으른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좌절하기 쉽다.
부모는 자녀가 뭘 어려워하는지 파악하고 잘하는 것은 격려해줘 ‘나는 유능한 존재’라고 느끼도록 함으로써 특성과 개성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공부를 못한다고 무작정 야단칠 것이 아니라 시각적 난독증 같은 병적인 원인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배지수 정신과 전문의·BFC 학습연구소 www.brainfitn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