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습관 중에는 조금만 바꾸면 나와 너는 물론이고 나라에도 좋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전철역 출입 때 카드를 인식기에 대자마자 통과하려다 개폐문의 오작동을 초래하거나, 고속도로에서 추월할 것도 아니면서 1차로를 차지한 채 유람하듯 달려 교통 체증과 사고를 유발하는 경우도 그런 예다.
정치판도 마찬가지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적 대척점(對蹠點)에 선 쪽에서 하는 말이나 행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반대부터 하고 보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반응의 속도나 내용을 보면 거의 자동판매기 수준이다.
비근한 예를 보자. 지난달 13일 이명박 대통령의 첫 라디오 연설에 대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현실 인식이 조금 안이하고 책임의식이 결여됐다”고 했다. 연설을 듣자마자 그날 아침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비판이다. 그런 정 대표도 똑 같은 일을 당했다. 2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대해 한나라당 대변인은 즉각 “사소한 일까지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푸념 일색”이라고 비판했다. 양쪽 모두 논평을 위해 단 몇 시간이라도 고심한 흔적이 없다. 자판기처럼 그냥 튀어나온 것이다.
정치인들은 기자들이 논평을 재촉하거나, 연설의 한 부분만을 발췌해 보도하기 때문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 점에 대해선 언론도 자성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말에 대한 책임은 결국 정치인 자신이 지는 것이다. 말이 행동을 구속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판기 같은 반응은 좋지 않은 습관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중요 정책이 국민에게 미처 전달되기도 전에 야당의 비판적 반응이 먼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일단 그렇게 첫 반응을 보이고 나면 이후 공식 회의 등에서는 말의 합리화를 위해 더욱 목청을 높이게 되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면서 반대는 공고해지고 여야 대결구도는 더 굳어지게 된다. 노무현 정권 때 한나라당이 그랬고, 지금의 민주당이 또 그러하다.
이런 체질로는 ‘건전한 비판’ ‘소통’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백년하청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판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공격과 막말이 횡행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성마름과 천박함은 언론, 시민사회단체, 지식인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다시 정치에 투영된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여소야대건 야소여대건 허구한 날 대한민국에선 바가지 깨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여야가 연정(聯政)을 하거나 다수당이 수(數)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정치적 교착상태는 깰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결국 다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여야가 아예 비판이나 반대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하더라도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여러 사람이 ‘비공개’ 논의를 통해 이모저모 따져본 뒤 국민 앞에 내놓으라는 것이다. 한나절, 아니 반나절 정도 늦는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처음엔 다소 답답하고 문제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유를 가질수록 감정보다는 이성, 말장난보다는 논리에 입각한 논평이 나올 것이고 표현 또한 한층 순화되지 않겠는가. 상대방은 물론이고 사회와 국민이 받아들이는 느낌도 다를 것이다. 작은 변화라도 얼마든지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