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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 기자의 가을이야기] 가을을 빛낸 스물두명의 이야기

입력 | 2008-11-03 08:47:00


사나이들 사연과 눈물, 그래서 더 빛났던 땀…

웃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우는 이도 생깁니다. 누군가 그림 같은 다이빙캐치에 성공해 하이파이브 세례를 받을 때, 누군가는 도둑 맞은 안타가 못내 아쉬워 발을 돌리지 못합니다. 누군가 끝내기 안타를 터뜨리고 양 팔을 번쩍 치켜올릴 때, 누군가는 고개를 떨군 채 쓸쓸히 마운드를 내려옵니다. 누군가 MVP로 선정돼 자랑스럽게 기념촬영을 할 때, 누군가는 단 10초라도 뛸 수 있기를 빌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전자보다는 후자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괜찮아. 잘 될 거야’라며 등을 두드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가을이야기’입니다.준플레이오프가 시작된 10월 8일부터 한국시리즈가 끝난 10월 31일까지, 모두 스물두명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문을 던져놓고 현답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가을을 보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일 때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하나 없다는 걸 실감하곤 했습니다. 오랜 무명생활 끝에 가을잔치에 나선 롯데 박종윤이 눈물 많은 아내와 복덩이 딸을 자랑할 때,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부친상을 당한 두산 김민호 코치가 아버지와의 지난 추억을 담담히 들려줄 때, 마음으로나마 함께 울고 말았습니다.

뜻하지 않은 수술로 자리를 비운 삼성 권오준의 아쉬움도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19년간 부산을 지킨 롯데 공필성 코치와 뼛속까지 푸른 피가 흐르는 삼성 류중일 코치의 자부심도 마음을 흔들었고요. 배팅볼 투수가 된 삼성 곽동훈, 국가대표의 꿈을 털어놓은 SK 정우람, ‘승리를 먹는 남자’로 거듭난 삼성 정현욱, ‘클로저’에서 ‘스타터’로 변신할 두산 정재훈도 그랬습니다. 두산 김현수의 아버지와 두산 채상병의 아내도 선수들 못지않은 감동을 줬습니다.

하고 싶었지만 못 다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가을잔치 첫 타석을 앞두고 부상당한 롯데 이승화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플레이오프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을 때, 올림픽대표팀에서 도중하차했던 두산 임태훈이 “잠시나마 군대에 가버릴까 생각했다”며 아픈 기억을 떠올릴 때, 3년간의 피나는 재활을 딛고 돌아온 SK 이승호가 “아무도 내가 야구선수였는지 모르더라”며 쓴웃음을 지을 때, 미약하게나마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었습니다.

결국 끝을 맺지 못한 채 야구의 가을이 저물었습니다. 하지만 열두달이 지나면 다시 2009년 가을이 찾아올 겁니다. 그 때도 수많은 선수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채 영광의 그라운드를 누비겠지요. 벌써부터 그들의 심장박동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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