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 씨는 “고전적인 리얼리즘 미학이 아닌 부조리한 삶의 이면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서울 예술의 전당
2004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연극 ‘갈매기’. 이 작품은 작가와 배우가 되고 싶은 등장인물을 통해 실현되지 못한 꿈을 다뤘다. 사진 제공 서울 예술의 전당
예술의전당 관객 선정 최고 연극 ‘갈매기’ 7일부터 재공연
연출가 부투소프 인터뷰
이 ‘갈매기’는 이상하다.
안톤 체호프(1860∼1904) 희곡에 묘사된 호수와 정원이 무대에 없다. 무대는 3면이 골판지로 된 방 안에 창공은 까만 새로 뒤덮여 있다.
러시아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47) 씨는 다른 ‘갈매기’를 불러냈다.
‘갈매기’는 서울 예술의 전당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연극이다. 지난해 관객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작품 중 ‘최고의 연극’으로 꼽혔다.
예술의 전당 연습실에서 한창 연습 중인 부투소프 씨는 3일 “전통적인 리얼리즘 연극이 아니라 부조리극으로 풀어낸 ‘갈매기’”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갈매기’는 작가를 지망하는 청년 트레플레프와 그의 연인으로 배우가 되기를 소망하는 니나를 통해 출구 없는 절망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일상적인 언행 속에서 어리석음과 허무함, 실현 불가능한 몽상을 보여줬지만 부투소프 씨의 손을 거치면서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난해한 연극이 됐다.
“100여 년 전 작품이지만 이 시대에 필요한 체호프의 언어를 새롭게 찾는 과정에서 부조리한 요소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현대인의 다양한 속성과 맞닿는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에서 트레플레프는 총으로 쏘아 죽인 갈매기를 들고 와 니나 앞에 내동댕이치면서 격렬하게 말다툼한다.
그러나 부투소프 씨의 ‘갈매기’에서는 트레플레프가 갈매기가 놓인 쟁반을 들고 나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춤을 추면서 니나와 대화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전형적인 극적 묘사가 2008년판에서는 낯설고 당혹스러운 장면으로 뒤집히는 것. 트레플레프를 짝사랑하는 여성으로 원작에서 검은 옷만 입었던 마샤에게는 내면의 들끓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얀 원피스와 노란 구두, 빨간 모자, 분홍색 선글라스 등 화려한 의상이 입혀졌다. 무대, 의상, 장면 어느 것 하나 ‘클래식’을 따르지 않은 파격이다.
체호프의 나라인 러시아 출신 부투소프 씨가 체호프 작품을 연출하기는 처음이다. 러시아가 아닌 한국 배우들과의 초연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갈매기’가 러시아어로 쓰였고 러시아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러시아 이야기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면서 “민족과 국가와 시대, 언어가 다르다 해도 인간 본질의 내면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문제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은 의미 있다”고 말했다.
작품은 트레플레프의 자살로 끝난다. 주인공의 자살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부투소프 씨는 “무대 장치를 눈여겨보라”고 당부했다. 3면이 골판지로 만들어진 공간은 트레플레프가 연극을 위해 창작한 무대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그 속에 갇혀 미치고 파국에 이르게 된다. 그는 “인간은 스스로 만든 일과 사건 속에서, 자신이 쌓아올린 성 안에서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간다”면서 “이른바 ‘세계화’ 시대라 불릴 만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벌어지는 세상이지만 현대인은 고독에 시달리고 극단적인 결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7∼23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3만∼5만 원. 02-580-1300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