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성근 감독(뒤)과 김정준 전력분석팀장 부자가 우승을 확정한 뒤 서로를 끌어안은 채 기뻐하고 있다. 사진 제공 SK
SK 김성근 감독-아들 전력분석팀장 정준 씨
그룹 퀸의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가 울려 퍼지는 그라운드.
두 팔을 번쩍 치켜 올린 젊은이가 그곳으로 향했다. 마운드 근처에 있던 ‘노장’은 양팔을 활짝 벌린 채 그를 기다렸다.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얼싸안고 서로의 등을 두드렸다. 짧지만 뜨거운 포옹. 주인공은 프로야구 SK 김성근(66) 감독과 김정준(38) 전력분석팀장 부자다. 아버지는 “수고했다”고 했고 아들은 “고생하셨어요, 잘하셨어요”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SK는 2년 연속 통합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김 팀장은 난생처음으로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며칠 뒤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우승이 확정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가슴을 강하게 안을 수 있었다. 그 강하고 뜨거운 느낌…. 아마 내가 죽는 날까지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내 가슴에 새겨질 아버지의 따뜻하고 기쁜 가슴을 지금은 마음껏 느끼고 싶다.”
LG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김 팀장은 1992년 은퇴한 뒤 이듬해부터 전력 분석의 길을 개척해 왔고 지금은 이 분야의 최고로 꼽힌다. SK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절묘한 수비 시프트 역시 김 팀장의 작품이다. ‘야구의 신’ 김 감독조차 “전력 분석은 도저히 아들을 따라갈 수 없다. 전적으로 믿는다”고 말할 정도다.
김 팀장은 4일 일본으로 갔다. 아시아시리즈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해 우승했을 때도 아버지를 안고 싶었지만 머쓱해서 못했다. 아버지도 그러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안아본 적도, 안겨본 적도 없는 부자에게 ‘첫 경험’의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김 팀장은 “지난해 아버지를 안지 못해 한이 됐는데 이번에 풀었다”며 기뻐했다.
평생을 야구에 바친 김 감독은 자녀들(1남 2녀)에게 내줄 시간이 없었다. 어쩌다 들어오는 곳이 집이라 함께할 시간도 없었다. 대신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야구를 알았고, 무뚝뚝한 아버지도 속마음은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먼저 안아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라운드에서는 누구보다 혹독한 ‘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 하지만 처음으로 아들을 품에 안은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아버지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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