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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스포츠현장] 허들만 보면 후들…숏다리가 기가 막혀!

입력 | 2008-11-05 09:10:00


‘한국육상의 희망’ 이정준(24·안양시청)은 2007년 중국유학을 다녀온 이후 가파른 기록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4번이나 한국기록을 다시 썼다. 9월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 남자 110m허들에서는 13초53만에 결승선을 통과. 베이징올림픽 남자110m허들 결선 7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대체 무엇이 달라진 것이냐?”고 물었다. 변화의 핵심은 ‘골반 쓰는 법’을 익힌데 있었다. 천 마디 말도 한 번의 행함에서 오는 앎을 따라오지 못하는 법. 이정준의 모교인 한국체육대학을 찾았다.

○느려도, 작아도 이길 수 있다

이정준이 창고에서 허들을 꺼냈다. 허들은 높이조절이 가능하다. 여자 400m허들은 높이가 0.762m, 여자100m허들은 0.838m, 남자400m허들은 0.914m로 조금씩 높아진다. 남자110m허들은 한 칸을 더 높여야 한다. 1.067m. 초등학생들이라면 허들 반대편에 높이뛰기용 매트를 깔아야 할지 모른다.

이정준은 “허들선수로서 가장 이상적인 신장은 188-192cm 사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몸의 중심이 110m허들의 높이와 거의 같다. 따라서 공중에서 점프를 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달리는 느낌만으로도 허들을 넘을 수 있다. 아테네올림픽금메달리스트 류시앙(25·중국)의 신장은 189cm. 베이징올림픽금메달리스트 다이론 로블레스(22·쿠바)는 191cm이다. 반면, 이정준의 신장은 185cm. 허들을 넘는 순간, 몸의 중심을 약간 띄워야 한다. 다시 지면에 발이 닿는 순간에는 중심이 낮아진다. 기록 면에서 다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중심의 등락폭을 최소화하는 것. 신체조건이 불리한 이정준에게 떨어진 과제였다.

이정준은 “허들은 기술운동”임을 강조했다. 스피드가 떨어지더라도, 신체적인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것이 허들이다. 인생사에서도 평탄할 때 보다 역경이 닥칠 때 더 강해지는 사람이 있다. 이정준이 그렇다. 그의 100m 기록은 11초F. 하지만 이정준 보다 100m에서 더 강한 선수들도 장애물을 세우면 뒷걸음친다.

이정준은 “류시앙의 100m 기록이 10초2,3대이기는 하지만 세계정상급 선수들과 비교하면 뛰어난 스피드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신 류시앙에게는 유연한 골반과 파워가 있다. 로블레스 역시 스피드보다는 허들을 넘는 순간의 탄력이 좋은 스타일. “난 키(170cm)까지 작다”고 하자 알렌존슨(37·미국) 이야기를 꺼냈다. 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존슨의 신장은 178cm. 용기를 얻었다.

○S라인으로 허들 넘기

유연성은 허들기술의 기초. 이정준의 일본 쓰쿠바대학 유학시절, 일본선수들은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댄스스포츠’ 수업을 신청해서 들을 정도였다.

보조운동에 돌입했다. 허들 위로 다리를 걸치고, 허벅지 안쪽·바깥쪽 근육을 늘렸다. 스트레칭과 함께 하체근력단련 효과가 있다. 무일(無逸)은 정신을 깨어나게 한다. 한체대 운동장에는 비명소리만 가득. 허들 한 번 넘어보기도 전에 하체가 풀렸다.

두 번째 보조운동은 기본자세 연습. 우선 왼다리(Lead Leg)를 들어서 허들을 넘고, 오른다리(Trail Leg)는 원을 그리며 허들을 제친다. 이 때 리드레그는 무릎을 먼저 차 올린 상태에서 허들방향으로 뻗는다. 만약, 무릎을 올리지 않고 발을 먼저 허들방향으로 가져간다면 몸의 중심이 급격히 떠올라 기록 면에서 손해를 본다. 트레일레그의 발목은 안쪽으로 최대한 당긴다. 그래야 원의 지름을 짧게 해 빠르게 허들을 넘을 수 있다. 이 과정이 소위 ‘골반 쓰기.’ 꼭 왼다리를 리드레그로 삼으란 법은 없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은 대부분 왼다리로 먼저 허들을 넘는다.

본 것은 많았다. 허들을 넘는 순간, 상체를 숙였다. 이정준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저도 예전에는 상체를 숙이는 줄 알았는데, 상체를 숙인다는 기분으로 하면 엉덩이가 빠져서 중심이동이 안됩니다.” 10년 넘게 하던 동작이었는데 이정준은 그 이유를 중국에 가서야 알았다. “몸을 S라인으로 만드세요.” 엉덩이를 빼지 않은 상태에서 꼬리뼈 윗부분을 접어야 한다. 아랫배를 허벅지에 붙인다는 기분으로 자세를 잡아야 중심이동이 자연스럽다.

○10개의 허들은 10번의 기회

10개의 허들로 채워진 110m. 출발선부터 제1허들까지의 거리는 13.72m. 이후 허들간 거리는 9.14m. 마지막 허들부터 결승선까지의 거리는 14.02m다. 기본훈련을 중시하는 중국에서는 110m허들을 온전히 뛰게 하는데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우선 허들 3개를 세웠다. 허들 사이는 착지하는 발을 제외하고 세 걸음 만에 이동한다. 이것은 허들이 아니라 벽. 그것도 통곡의 벽이다. 혹시라도 걸려 넘어질까 두려워 멈추고,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아오기를 수차례. “도저히 안 되겠네요. 허들을 좀 낮추죠.” 여자 400m허들의 높이(0.762m).

왼다리가 나가는 순간에는 오른팔을 뻗고, 오른다리가 나가는 순간에는 왼팔을 뻗으면 되는 것을. 자세를 의식하다보니 제식훈련에서 ‘고문관’ 소리를 듣는 병사처럼 팔다리가 따로 논다. 허들을 넘는 순간, 휘청휘청. 골반은 아려온다. 이정준은 “100m를 13초대에 뛰는 일반인이라도 110m허들은 20초 이상 걸릴 것”이라고 했다.

천하의 류시앙과 로블레스에게도 완벽한 레이스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6-7번째 허들을 넘을 때면 어느 선수나 스피드가 떨어지고, 리듬의 변화가 온다.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허들에 걸리기 쉬운 순간이다. 이정준은 “단거리에서 가장 역전의 변수가 많은 것이 바로 110허들”이라고 했다.

10개의 허들은 10번의 기회. 스타트가 늦었어도 만회할 시간은 충분하다. 심지어 10번째 허들을 넘은 다음에도 리듬이 망가져 전세가 뒤집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정준은 “레이스 도중 단 한번도 1등에 대한 열망을 버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한 자세로 혈혈단신 중국과 일본을 누볐다. 이정준 인생의 세 번째 허들은 바로 단거리강국 미국. 그는 조만간 또다시 육상유학을 떠난다. 13초의 짧은 승부에서도 10번의 기회가 있거늘, 한 사람의 삶 속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기회가 있을까. 24세 청년은 온 몸으로 “포기란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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