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당선자의 인기는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을 통해 정치적 지형 자체를 바꿔놓을 것이라는 기대감 이외에도 상당부분 대중연설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실상 그를 오늘 자리에 있게 한 계기 또한 2004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지원유세였다. 오바마 당선자의 연설능력은 현대사에서 연설로 가장 유명했던 존 F.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비교될 정도다.
● 꿈과 희망 등 미래지향적 키워드 앞세워
오바마 당선자의 대중연설은 변화와 희망, 꿈과 통합 등 이상적인 가치를 앞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연설에는 "Dream of America(미국의 꿈)"라는 어구가 꼭 들어간다. 이 어구는 45년 전 흑인인권운동의 선구자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나에겐 꿈이 있습니다)"과 묘하게 맞물리는 효과를 전달한다.
전문가들은 오바마 당선자의 연설에도 흑인 특유의 리듬감이 살아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중연설에서 시적 운율을 적절히 사용하는 오바마의 어법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딱딱한 연설과 크게 차별화되는 요소로 부각돼 왔다.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역시 3음절 리듬이다. 이 같은 리듬감은 청중에게 더 잘 들리고 더 잘 기억되는 효과를 자아낸다.
김미경 아트스피킹 강사는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있으면 문장 하나하나가 운율을 타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마치 시 낭송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게다가 오바마 당선자의 제스처는 충분히 격정적이고 효과적이다. 이를 통해 청중의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공략하는 '이중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같은 반복과 운율, 격정적인 제스처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연설가로 칭송 받는 마틴 루터 킹 목사에서 전범을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똑 부러지는 악센트, 가볍지 않은 음색도 그의 경험부족을 상쇄하고 있다.
● 오바마가 좋아하는 어구는 따로 있다
킹 목사가 문장의 첫 부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어구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오바마 당선자 역시 특정 어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활용했다. 오바마가 자주 썼던 어구들은 다음과 같다.
"Now is the time to.,."(이제 ~할 시간입니다)
"I don't want to see..." (나는 ~를 보길 원하지 않습니다)
"I believe that...." (나는 ~를 믿습니다.)
"And that is why..."(그리고 그 이유는~)
"We were promised..."(우리는 ~를 약속 받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어구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과 흡사한 대목이 많다고 평가한다.
킹 목사 역시 'Now is the time to~(이제 ~할 시간입니다)'나 'I have a dream that~(나에겐 ~의 꿈이 있습니다)' 'We can never be satisfied~(우리는 결코 ~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등 쉽고 간결한 미래 지향적 어구를 반복 사용하며 주의를 집중시키고 메시지를 청중들에게 각인시켜왔다.
오바마의 스피치를 분석해놓은 책 '사람의 마음을 얻는 말'에서는 오바마 식 화법의 매력을 삶을 기반으로 한 풍부한 이야깃거리, 핵심을 쉽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능력, 적극적이지만 겸손한 자세 세 가지로 분석했다. 오바마의 스피치는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이고, 힘이 있지만 부드럽다는 얘기다.
김경태 C&A Expert 대표는 "이런 방식으로 하나의 메시지를 두 가지 감각기관에 동시에 소구하여 침투력을 높이고,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정치 연설을 흥미롭고 즐거운 공연처럼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오바마 당선자의 연설능력은 미국 CBS 방송의 지적대로 "미디어가 아무리 발달해도 연설자와 청중이 직접 소통하는 면대면(面對面) 커뮤니케이션을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선례가 되고 있다.
● 호텔방에서 직접 연설문 작성, 최근엔 연설참모 의존 높여
타고난 연설가인 오바마 당선자는 자신의 원고를 직접 작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역대 전당대회 사상 최고 시청률을 갱신한 8월28일의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이 대표적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당시 선거 캠프 내 모든 전략가들을 물리치고 잠을 줄여가며 호텔 방에서 이 원고를 완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모든 원고를 그 스스로 작성할 수는 없는 일. 최근에는 참모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다고 한다.
오바마 당선자의 연설 지원 참모는 시카고에서 정치적 고락을 함께 한 밸러리 재럿 해비타트 최고 경영자, 오스탄 굴스비(경제정책 자문)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 그리고 연설문작성의 실무 3인방으로 알려진 존 패브루, 애덤 프랭클, 벤 로즈로 알려졌다.
스피치 참모 3인방의 특징은 모두 30세 이하라는 점이다. 젊은 만큼 미국인들이 이번 선거에서 원하는 '변화(Change)'라는 키워드를 잘 뽑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26세의 스피치 라이터(연설문 작성자)인 존 패브루는 오바마 당선자의 스타일을 잘 꿰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높다. 페브루는 2004년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진영에서 일하다 오바마가 그해 민주당 전국 전당대회 기조연설 리허설을 하는 자리에서 연설문을 다듬어 준 인연으로 발탁됐다.
5일 새벽 미국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는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당선 후 첫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미국은 단지 다양한 인종의 집합소가 아니다,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과 아시안, 장애인과 비장애인, 게이와 이성애자 빈곤층과 부자… 미국은 말 그대로 하나,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하나의 미국이다”고 외쳤다. 언제나 그랬듯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죽기 전날 했던 연설을 인용한 것이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