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산은 억새로 유명한 곳이다. 바람은 억새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쉬이익’ 소리를 내며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는 햇빛 각도에 따라 베이지색,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사진 제공 알파인뉴스
억새군무 하늘에 詩를 쓰고
호수물결 가슴에 별을 담고
정상서 바라보는 산정호수는 한폭의 수채화… 하산길 등룡폭포는 가슴까지 씻어줘
경기 포천시 명성산(해발 923m)에 가면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계곡을 타고 올라온 산바람은 정상 자락에 만개한 억새 군락을 쓰다듬고 지나가며 ‘쉬이익’ 하는 소리를 낸다. 청명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쓰리다.
솜털처럼 부풀어 오른 억새들은 바람에 따라 넘어지며 골을 만든다. 햇빛 각도에 따라 때로는 흰색, 베이지색,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는 억새 군락의 장관에 탄성이 절로 난다.
명성산은 억새로 명성을 얻은 산이다. 듬성듬성 억새풀이 나 있기는 하지만 팔각정 인근에서 산정호수 방면으로 향하는 길에는 가장 큰 군락이 형성돼 있다. 1997년부터 해마다 10월 초쯤 억새축제가 열린다. 11월쯤 찾으면 덜 복잡할뿐더러 스산한 늦가을 정취를 느끼는 맛도 있다.
산정호수 쪽 비선폭포에서 시작해 등룡폭포를 지나 억새꽃 군락지를 보고 돌아오는 3시간 30분짜리 코스(8km)가 가장 대중적이다.
1일 산행에서는 산안고개로 시작해 정상∼삼각봉∼억새꽃 군락지∼등룡폭포∼비선폭포를 통해 산정호수 쪽으로 내려오는 6시간짜리 코스(14km)로 길을 잡았다. 약간 험하고 시간도 곱절이나 걸리지만 이 산의 시원한 능선을 맛보려면 어쩔 수 없다.
산안고개에서 시작한 산행은 30분 정도 올라가면 10층 아파트만 한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디딜 곳도 잡을 것도 마땅치 않아 설치된 외줄을 잡고 낭떠러지 길을 건너려니 식은땀이 절로 났다. 2시간 정도 가파르고 험한 산길을 타면 정상이 나온다. 족구장보다 작은 정상은 사실 볼품이 없다.
그러나 명성산의 맛은 이제부터다. 삼각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타다 보면 양옆으로 펼쳐지는 시원한 산 아래 풍경에 눈이 시릴 정도다. 멀리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산정호수는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출렁인다. “너무 예쁘다” “경치가 끝내준다”는 탄성이 이곳저곳에서 터진다.
그렇게 1시간 20분 정도 능선을 타다 보면 억새 군락지가 펼쳐진다. 사람 키보다 큰 억새에 파묻혀 내려오는 길이 하산길이다. 1시간 정도 내려오다 보면 등룡폭포가 나온다. 용이 폭포수의 물안개를 따라 승천했다는 이 폭포는 이단으로 굽이치기에 이중폭포, 쌍룡폭포로도 불린다. 따로 포토존이 설치돼 있을 정도로 경치가 수려하다.
완만한 산길을 따라 오면 산정호수가 나온다. 포천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인근 조각공원과 산책로를 둘러봐도 좋다.
명성산 자락에는 육군 사격장이 있어 입산이 제한될 때가 있다. 주말은 상관없지만 평일 산행의 경우 산정호수 관광지부(031-532-6135)에 문의해 보고 길을 나서는 게 좋다.
포천=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