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가장 큰 서점 ‘W&G 포일’은 15분 만에 300권을 팔았다. 문을 열기 전부터 400명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셀프리지 백화점에서는 몇 분 만에 250권이 모두 동났다. 백화점 홍보 담당자는 “아수라장이었다. 재고가 있었으면 1만 권을 팔았을 것이다”고 더타임스 기자에게 말했다.
하루 만에 20만 권이 매진됐다. 방송사는 책을 사가는 고객의 모습을 중계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처음 출간된 1960년 11월 10일, 영국의 풍경이다.
이 소설은 D H 로런스의 작품이다. 1928년 이탈리아에서, 이듬해 프랑스에서 선을 보였다.
작가의 고국인 영국과 미국에서는 판매가 금지됐다. 성불구 남편을 가진 주인공 코니와 사냥터지기 멜로즈와의 대담한 성행위 장면이 문제였다.
영국에서는 어떻게 해서 32년 만에 나왔을까. 1959년 제정한 ‘외설물 출판법’ 덕분이었다. 이 법은 일부 내용이 외설적이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면 출판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펭귄출판사가 로런스 사망 30주년(1960년)을 맞아 20만 권을 인쇄하자 검찰이 기소했다.
재판은 런던 중앙형사법원에서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렸다. 피고 측은 성직자와 문인을 포함해 35명의 증인을 동원했다.
검사는 심문이 유리하게 진행되지 않자 “당신들의 아내나 하인이 읽기를 원하는 책이냐”고 배심원단(남자 9명, 여자 3명)을 다그쳤다.
펭귄출판사는 무죄 판결 이후 1년 만에 200만 권을 판매했다. 성경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 판결은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작지 않다. 외설을 이유로 책 판매를 금지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펭귄출판사는 배심원단에 대한 감사의 말을 1961년 개정판에 담았다.
소설뿐 아니라 영화도 각국에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55년 미국에서 나온 같은 제목의 영화는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이후에도 세 차례(1981년, 1993년, 2006년)나 영화로 나왔다.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반, 극장에 갔다가 ‘중요 장면’이 뿌옇게 처리돼 실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