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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얼치기” “악덕업자”… 막말 불사

입력 | 2008-11-10 03:03:00


■ 품위와 거리 먼 한국 정당 말말말

상대방 인신공격 - 근거 부족한 ‘~카더라’ 논평 예사

‘반성 - 정책대안 제시’ 한나라 14% - 민주당 7% 그쳐

英 ‘거짓말쟁이’ → ‘정직성 부족’ 으로 수위조절 대조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난해 12월 7일. 대통합민주신당 최재천 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논평을 냈다.

“이명박 후보의 국정 전반에 대한 ‘무지’가 돋보이는 자리였다. 이 후보의 ‘무지’와 ‘준비 없음’, ‘뻔뻔한 선전선동’에 국민은 비웃음을 보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TV토론회 직후 한나라당 이 후보를 비판한 논평이다.

이에 뒤질세라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며칠 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정 후보에게 남은 것은 오직 권력욕뿐인 것 같다…. 게다가 철학도 비전도 없이 권력 놀음만 일삼는 정 후보는 진정 국정실패 세력의 후계자답다…. 정 후보도 이제 그만 치근거리는 것이….”(지난해 12월 12일)

이런 독설 섞인 논평은 정치권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만하면 얌전한 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양당 부대변인들의 논평은 공식석상에 어울리지 않는 속어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이 후보는)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의혹투성이 후보다. 부패의 수도꼭지다. 꼭지를 틀면 틀수록 구정물이 쏟아진다.”(지난해 11월 13일·대통합민주신당 송두영 부대변인)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정동영 후보와 김현미 대변인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부창부수(夫唱婦隨)도 아니고…. 어쩌면 그렇게 정말 세트로 무식한 건지….”(지난해 12월 11일·한나라당 권기균 부대변인)

○‘꿈’도 ‘미래’도 없는 정당 논평

본보 취재팀이 분석한 여야 논평 1000건은 비판 일색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나라당은 549건 중 389건(70.9%)이 상대 당이나 상대 당 정치인, 아니면 정책 비판을 위한 논평이었다. 민주당의 경우 논평 451건 가운데 338건(74.9%)이 비판적이었다.

정책 대안을 제시하거나 촉구하는 논평은 한나라당 63건(11.5%), 민주당 25건(5.5%)에 그쳤다. 자기반성에 해당하는 논평은 한나라당 13건(2.4%), 민주당 7건(1.6%)에 불과했다.

‘미래’ ‘꿈’ 등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도 정당 논평에서는 그 의미가 다르게 사용됐다.

‘미래’란 단어는 1000건의 논평에서 152번 등장했다. 하지만 ‘미래가 막막하다’거나 ‘미래를 위해 사퇴해야 한다’, 또는 ‘미래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처럼 상대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 경우가 69건에 달했다. 나머지 83건은 긍정적인 의미였지만 그나마 ‘미래를 책임지는 당’이라거나 ‘우리 후보는 미래를 얘기한 반면…’처럼 자랑을 하기 위한 경우가 19건이었다.

54번 사용된 단어인 ‘꿈’의 경우는 ‘헛된 꿈을 접어라’ ‘또 다른 도박을 꿈꾸고 있다’ ‘꿈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등 38건이 상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활용됐다. 근거가 부족한 대변인의 의혹제기 논평 또한 많았다. 논평을 통해 자신들이 ‘∼라면’ ‘∼한다면’ 등의 가정을 한 뒤 이를 다시 비판하는 ‘라면 논평’은 정치권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라면’이 포함된 논평을 각각 △2007년 29회와 32회 △2008년 20회와 26회를 사용했다. 양당은 또 ‘∼다면’이 들어 있는 논평을 △2007년 82회와 92회 △2008년 71회와 42회 사용하는 등 모두 394회의 가정문이나 조건문을 논평에서 이용했다.

○‘사기도박당’ vs ‘원조비리당’

상대 당 또는 상대 후보를 지칭하는 표현을 놓고 보면 한국의 정당은 ‘품위 있는 공당(公黨)’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반듯한 사람은 이회창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이다”(지난해 12월 4일·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처럼 대변인이 상대 당 대선 후보를 아예 이름만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직함 없이 ‘∼씨’로 부르는 것은 예사다.

호칭을 붙였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사실상 욕설에 가까운 경우도 적지 않다. “이명박 후보의 영문 표현인 ‘MB Lee’는 ‘Most Best Liar(가장 뛰어난 거짓말쟁이)’.”(지난해 10월 13일·대통합민주신당 전민용 부대변인)

“단물이란 단물은 다 빨아먹은 정동영 후보…. 마치 소금 위에 살아 있는 새우처럼 팔딱거리며….”(지난해 11월 21일·한나라당 김종상 부대변인)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라 당을 뭉뚱그려 지칭하는 표현은 공당의 논평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원색적인 표현도 많다.

한나라당은 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 포함)을 지칭해 ‘얼치기좌파 아마추어’ ‘사기도박당’ ‘삥치기당’ ‘악덕업자당’ ‘신당이 아니라 쉰당’ 등의 표현을 썼다. 반면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향해 ‘성(性)나라당’ ‘원조비리당’ ‘부패종합세트당’ ‘공작정치 후예정당’ 등으로 비난했다.

○‘거짓말쟁이’ 없는 영국 의회

영국 의회에서는 ‘거짓말쟁이’란 말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정직성이 부족하다(Lacking honesty)’ 혹은 ‘용어상 부정확하다(Terminological inexactitude)’라는 말로 수위를 조절한다.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 저질 논평이 많은 것은 척박한 정치풍토에다 상대 당을 무조건 공격하라는 당 지도부의 압력, 그리고 ‘튀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비정상적인 부대변인 문화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권혜진 기자 hjkwon@donga.com

논평분석 인터렉티브 그래픽 (닷컴온리)

정당 논평에 쓰인 단어들의 빈도를 구하기 위해 조사와 어미를 분리하는 등의 데이터 클리닝 작업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내용분석 소프트웨어인 영남대 박한우 교수의 KrKwic, 텍스트 에디터인 울트라에디트(UltaEdit) 등의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독자들이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동아닷컴용 인터렉티브 그래픽을 별도로 제작했다. '정당 논평에 담긴 부정적 단어들의 사용 횟수' 그래픽의 경우 신문에선 '한나라당, 민주당, 정당 전체'의 3종류만 제공되나 동아닷컴에선 연도가 추가된 7종류의 그래픽을 원하는 대로 바꿔볼 수 있다. 정당 논평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 단어트리(word-tree) 형태의 검색도 함께 제공한다. 예를 들어 '차떼기'를 검색하면 이 단어 이후에 쓰인 문장이 나뭇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 인터렉티브 그래픽들은 IBM의 매니아이즈(many eyes)라는 통계그래픽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10월에 개설한 비주얼라이제이션랩(vizlab.nytimes.com) 역시 이 기술을 사용한다.

그래픽에 링크된 매니아이즈 사이트를 방문하면 좀 더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으며, 공유하기(share this)를 이용해 내 사이트로 담아갈 수도 있다.

권혜진 기자 hj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