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비 벌려고 발 들였다 빚만
사채까지 쓰다 ‘보도방’ 넘어가
5개월간 감금… 노예같은 생활
친구 따라 강남 갔을 뿐인데 돌아오려 했을 때에는 길이 없었다.
지난해 수도권의 한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심모(20·여) 씨의 꿈은 뮤지컬 배우였다. 그는 하루빨리 극단에 들어가고 싶어 대학 진학 대신 서울로 올라와 연기 수업을 받았다. 학원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낮으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심 씨는 고향 친구를 따라 서울 강남의 한 가라오케에 갔다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비싼 학원비를 걱정하던 심 씨에게 가라오케 사장이 유혹적인 제안을 해온 것. 사장은 “너처럼 연예인 뺨치는 얼굴이면 한 달에 1000만 원은 벌 수 있다”며 선뜻 100만 원을 건넸다.
현실의 덫은 교활했다. 손님들 앞에서 춤추며 노래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심 씨는 ‘영업’을 강요당했다. 손님을 끌어온 실적만큼 수수료를 받지만 손님이 갚지 않은 외상 술값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일명 ‘구좌 사장’이라고 불리는 그 일을 심 씨는 ‘빨리 돈을 모을 수 있다’는 말에 덜컥 맡게 됐다.
‘스무 살 여사장’의 외상 독촉이 통할 리 만무했다. 하나 둘 달아놓은 외상이 쌓여 심 씨는 두 달 만에 1000만 원의 빚을 졌다. 급한 김에 사채를 끌어 쓰다 빚은 순식간에 3500만 원으로 불었다.
궁지에 몰린 심 씨에게 올해 5월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더욱 정교한 덫이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유흥업소 여성들의 합숙용 아파트인 ‘보도방’을 운영하는 이모(36) 씨는 “빚을 갚아줄 테니 천천히 돈을 갚으라”고 했다.
‘이 기회에 빚을 갚고 탈출하자’는 심 씨의 결심은 결국 나락으로 가는 선택이었다. 어쩌다 하룻밤에 수백만 원의 매출을 올린 날에도 이 씨는 “빚부터 갚으라”며 모두 빼앗아갔다. 이 씨에게 남은 빚이 얼마인지 물어볼 때면 폭언과 함께 따귀를 맞았다. 얼마를 갚았는지도 모른 채 심 씨는 아파트에 갇혀 노예처럼 일을 했다.
그렇게 5개월. ‘레미제라블’의 레아 살롱가 같은 위대한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심 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8일 심 씨 등 유흥업소 여성들을 대상으로 고리(高利)를 챙기고 성폭행한 혐의로 이 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이 씨가 심 씨 등에게 연 500%의 이자로 10개월 동안 수억 원의 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