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국가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 3권으로 나눌 때 사법의 한 축을 담당하는 헌법기관이다. 일반 민사 및 형사소송, 행정소송 등에 대한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동렬(同列)에 있다. 대법원장과 동격인 헌재소장 외에 재판관 8명과 행정업무를 맡는 사무처장을 합쳐 장관급 이상만 모두 10명이다.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회가 재판관을 각 3명씩 뽑기 때문에 정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심판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은 헌재의 생명이다.
▷헌재와 대법원의 위상은 나라마다 다양하다. 독일은 헌재가 상위기관으로 돼 있고, 미국은 헌재가 따로 없이 연방대법원이 그 역할까지 한다. 우리나라는 1988년 헌재가 탄생하기 전까지 헌법위원회 또는 대법원에 위헌법률 심사권이 주어졌으나 거의 유명무실했다. 따라서 실질적인 위헌심판의 역사는 1988년 헌재 출범 이후 20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도이전특별법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심판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줄을 이으며 헌재의 위상은 짧은 시간에 한껏 높아졌다.
▷기능만을 본다면 헌재가 대법원보다 한 단계 위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대법원은 국회가 만든 법률을 그대로 해석, 적용하는 데 그치는 반면 헌재는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법률의 효력을 당장 정지시킬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헌재는 헌법을 지키는 사수대인 셈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13일로 예정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위헌 여부 결정을 연기하라고 헌재를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도 공당(公黨)으로서, 3권의 한 축인 국회의 일부라는 점에서 헌법기관끼리 부딪치는 양상이다.
▷민주당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재 접촉’ 발언에 대한 국회 진상조사(11∼18일 예정)가 끝난 뒤 종부세 위헌 여부를 결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심판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헌재 선고일을 중간에 넣어 조사 일정을 잡은 것이나, 당사자들에게 이미 통보된 날짜를 뒤로 미루라는 것은 헌재의 독립성을 훼손한다. 정치적 부담을 줘서 종부세 위헌결정을 막겠다는 속셈이다. 민주당 집권 당시 대부분의 재판관 진용이 짜인 헌재에 압력을 넣는 것 자체가 오해를 살 만한 일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