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석연의 연필화 ‘굴비’(1998). 사진 제공 아트사이드
외골수 작가정신은 영원히…
그는 불우한 화가였다.
평생 돈이나 명예와 담을 쌓고 지냈다. 어떤 공모전에도 참여하길 거부했고 오직 집에 틀어박혀 잘 팔리지도 않는 연필 그림만 그렸다. 화단에서는 그를 ‘시대의 이단아’라고 불렀다. 타계했을 때 장례식장을 찾은 미술계 인사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화가 원석연(1922∼2003)의 영혼이 담긴 작품세계 전모를 보여주는 전시가 16일까지 서울 관훈동 아트사이드(02-725-1020)에서 열린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10m에 가까운 거대한 개미군상이 압도한다. 멀리서 볼 때, 가까이 볼 때 느낌이 다 다르다. 하나하나 개미가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마치 인간군상을 보는 듯하다. 지우개를 사용하지 않고 선 하나만 잘못 그어도 종이를 버리고 새로 시작했다는 외고집 화가. 도대체 이 작품은 얼마만 한 집중력으로 완성한 것일까.
연필화는 낯선 장르인데도 관객들은 그의 작품에 쉽게 빠져든다. 아트사이드 이동재 대표는 “화가의 정성이 사람들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전시를 보고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고맙다’고 인사하는 관객이 많았다”며 고독했던 화가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기뻐했다.
연필 하나로 다채로운 정서적 울림을 빚어낸 원석연은 황해도 신천 태생.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웠다. 1945년 미국 공보원에서 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연필화만 고집했다. 그 외로운 여정 덕에 밑그림으로 간주돼온 연필화는 독립된 장르로 힘을 얻었다. 5주기 추모전에 나온 굴비, 마늘, 개미, 청계천, 초가집 등 90여 점. 어느 하나 대충 그린 게 없다. 우리가 거쳐온 시대의 초상과 신산한 삶의 풍경은 화가의 몽당연필을 통해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타협하지 않는다. 단지 그림으로 말할 뿐이다’고 했던 원석연. 남이 알아주든 말든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고독과 소외를 넘어섰다. 그 증거를 모은 이번 전시는 ‘화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평생 그 길을 고집한 외골수.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화가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