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불태우고 버리고 간 왜성(倭城) 때문에 왜 우리만 피해를 보아야 합니까.”
11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 울산 중구 학성동 울산왜성 주변 주민 대표 20여 명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일본인이 쌓은 왜성을 보존해야 한다며 건축허가를 제한해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게 회견의 골자.
울산왜성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년)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등淸正)가 일본군을 동원해 한국 고유의 울산읍성과 병영성을 허문 돌로 쌓은 성이다. 1598년 일본군이 퇴각할 때 성을 불태우고 도망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경상좌도 병마우후로 울산에 부임한 김홍조 선생이 1913년 이 성 일대 20여만 m²를 사들여 공원으로 가꿨으며, 선생의 후손인 김택천(1987년 작고) 전 국회의원이 울산시에 기증했다.
이 성은 1967년 사적 제9호로 지정된 뒤 1997년 10월 울산시 문화재자료로 조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성에서 반경 200m 이내에는 건물 신·증축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는 점. 주민들은 “성 주변이 울산에서 가장 낙후된 우범지대로 전락했다”며 “일본 관료들의 독도 망언이 잇따르는 마당에 성을 문화재로 지정해둘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했다.
울산시와 경북 경주시의 경계에 위치한 관문성(국가사적 제48호) 주변도 민원이 끊이지 않는 곳.
관문성을 사이에 둔 울산 북구 농소3동 주변은 건물 신·증축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지만 경주시 외동읍 문산리에는 성과 접한 곳 100여만 m²에 공단이 조성되고 있다.
“울산시만 문화재보호법을 엄격히 적용하며 건축허가를 제한해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원성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인접한 자치단체와 형평에 어긋난 문화재 정책도 이제는 사라져야 할 ‘규제 전봇대’가 아닐까.
정재락 기자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