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했으니 다행이지, 떨어진 친구들은 충격이 꽤 오래갈 거야. 거기에만 매달리느라 아무것도 못했으니….”
얼마 전에 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한 말이다. 그녀는 5월 어느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운 좋게 남들보다 일찍 정식 사원이 됐다. 서류 심사에서 적성검사, 면접, 해외 교육, 인턴 과정을 거쳐 최종 입사 통보까지 전형 기간이 무려 3개월이나 되었다. 그 회사만 바라보고 전형에 임했던 지원자들에게 최종 탈락 통보는 어쩌면 슬픔보다는 배신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기업의 전형 기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서너 달이 걸리는 전형에 예비 졸업생의 마음고생이 커지고 있다. 물론 기업의 처지에서는 여러 단계의 전형을 통해 ‘궁합’이 잘 맞는 사원을 고를 수 있다. 입사 지원자 역시 애사심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는 순간 예비 졸업생의 기쁨은 배가될 것이다.
문제는 합격 여부를 떠나 긴 전형 기간이 학생 개인에게 심적 부담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들은 잦은 결석으로 강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담당 교수 역시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고려대에서 영어 과목을 가르치는 캐나다 출신 강사는 한국의 이런 취업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업이 학생의 학업이 방해받지 않도록 면접 스케줄을 잡는 것이 관례인 캐나다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기업체 응시를 위해 학생이 수업을 빠지는 게 당연한 일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수업을 아예 듣지 않은 학생이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을 열어달라고 떼를 쓰는 바람에 곤란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강신청을 받을 때부터 ‘입사와 관련된 일은 수업 불참의 이유가 되지 않으니 참고하라’는 안내문을 함께 올렸다.
두 달 동안 어느 기업의 전형에 매달리던 친구는 중간고사를 포기하고 최종 면접을 보러 갔다. ‘취업만 된다면 이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결국 최종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수업을 제대로 못 들어 마지막 학기에 C학점을 띄우게 생겼다”면서 울상을 짓는 그녀를 보면서 기업의 인사문화, 즉 신입사원 채용 관행이 학생의 수업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요즘 대학생은 취업이다, 학점이다 해서 대학 시절의 낭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마지막 학기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할 여유는 꿈도 못 꾼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생에게 사회의 새로운 피가 되기를 요구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정아름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본보 대학생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