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1의 온천관광도시인 오이타(大分) 현 벳푸(別府) 시가 온천수보다 더 뜨거운 한국 영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의 동서대학교 임권택 영화예술대학과 일본의 오이타 현립 예술문화 단기대학(大分 縣立 藝術文化 短期大學) 및 벳푸 대학이 8일부터 16일까지 오이타 시와 벳푸 시에서 공동개최한 '제 1회 한일 차세대(次世代) 교류영화제' 때문.
이번 행사에는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씨받이'의 강수연 씨와 '서편제'의 오정해 씨 등이 참석해 뜨거운 호응을 받았으며, '아제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춘향뎐' '취화선' '천년학' 등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 30편 등 32편이 상영 됐다.
또 임 감독의 특강, '나의 인생, 나의 영화'와 '소프트파워 시대의 한일관계'를 주제로 한 양국 지식인들의 심포지엄도 열려, 문화 예술을 중심으로 한 차세대 한일 교류에 대한 양국의 관심사를 집중 논의했다.
이번 영화제의 산파는 부산에 한국 최초로 영화감독의 이름으로 단과대학을 만든 동서대학 장제국 제1부총장과 5년간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을 지낸 오이타 현립 예술문화 단기대학 시모카와 마사하루(下川正晴) 교수의 양국 문화 예술 교류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 두 대학은 1년에 걸친 진지한 논의 끝에 젊은이들의 공통 언어인 영화예술을 통해 양국 차세대의 교류와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기로 하고, 그 첫 번째 '오마주'의 대상으로 한국 영화의 세계적 거장인 임권택 감독을 선정했다.
강수연 오정해 두 여배우를 동시 초청하게 된 것은 일본에 고착되다시피 한 배용준 이병헌 권상우 송승헌 원빈 등 한국 남성 배우 위주의 한류 열풍에 새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해서였다.
일제 강점기 주먹과 발차기로 일본 깡패를 물리치며 조선 청년의 기개를 보여준 협객 김두환을 그려 낸 '장군의 아들'이 상영작에 선정된 것은 흥미로운 일. 또한 1941년 작 '지원병(안석영 감독) 등 일제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한국 영화 2편이 마지막 날 상영됐다.
14~16일 사이 부인 채혜숙 씨와 함께 영화제에 참석한 임 감독은 14일 저녁 벳푸시 비콘 플라자에서 열린 영화제 개막식에서 "지금까지 전 세계 많은 곳에서 내 이름을 건 영화제가 개최됐지만 동시에 30편이 상영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 같은 문화 교류를 통해 차세대 한일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개막식에서 하마다 히로시 벳푸시장은 "인구 11만 명의 벳푸에 연간 20만 명의 한국 관광객이 찾아온다"면서 "한국의 구로사와 아키라(黑澤 明) 감독이라고 불리는 임권택 감독이 벳푸에서 영화를 찍고, 이를 계기로 많은 한국 영화인들이 벳푸를 로케이션 장소로 활용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또 "내년부터는 시 차원에서 이 영화제를 전폭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강수연 씨는 일본어로 인사말을 해 800여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동서대 장제국 부총장은 "'거장 임권택 감독'이란 브랜드를 한국에만 묶어 둘 수는 없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은 오이타와 벳푸의 일본 학생들이 부산에 와 영화를 배우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원로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 "이 정도 규모의 도시에서 한국의 대표적 감독과 배우들을 초청해 이처럼 성대한 영화제를 연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오이타·벳푸=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이 기사는 본보와 dongA.com이 공동 기획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