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한나라당 박근혜와 제3의 인물들, 민주당 정세균과 386과 대안 인물들, 이회창, 그리고 장외의 잠룡들. 이들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한테서 영감(靈感) 같은 것을 얻고 행동에 나선다면 자신들의 정치적 성공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다행이겠다.
統合에 헌신해야 지도자로 성공
2004년 7월 정치라곤 주(州)상원의원 경험뿐이던 43세의 오바마가 민주당 존 케리 대선후보 출정식(전당대회)에서 분위기 띄우기 연설을 하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타임지(誌)가 ‘녹아웃(KO) 연설’이라고 칭찬한 16분짜리 연설은 4년 4개월 뒤 ‘미합중국 대통령 오바마’를 낳는 동력이 됐다.
‘미국은 하나’라는 단호한 메시지가 미국민들을 감동시켰다. “흑인도, 백인도, 라틴계도, 아시아계도, 우리 모두는 성조기에 충성을 맹세하고 미합중국을 지키는 하나의 국민(one people)입니다.”
그러면서 오바마는 “냉소의 정치가 아니라 희망의 정치에 참여하자”고 호소했다. 그의 연설은 핏발을 세우고 악을 쓰며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8년 11월 이번엔 역사적인 대통령 당선 연설에서 그는 ‘어떤 것으로도 깰 수 없는 단결’을 주문했다. “오랜 세월 우리 정치를 타락시킨 당파주의, 편협성, 유치함을 다함께 배격합시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은 가파릅니다. …세계를 분열시키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패배시킬 것입니다.”
오바마의 승리는 국민통합에 대한 일관된 신념, 그리고 행동으로 입증한 진정성의 산물이라고 할 만하다. 분열 아닌 통합, 냉소 아닌 희망이야말로 미국과 세계가 위기를 돌파할 에너지임을 미국 유권자들이 공감한 결과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참 답답하다. 나라가 잘되려면 우선 국가경영의 상부구조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정부, 그리고 여야 정당이 동참하는 국회가 바로 상부구조의 몸통이다. 이들이 체제, 법과 제도, 정책을 합리적 효율적 생산적으로 운용해야 시장(市場)과 기업을 포함한 민간 각 부문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 국태민안(國泰民安)이 거기서 비롯된다. 세계적 혼란과 위기가 덮칠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와 정치권에선 통합, 협력, 상생의 자세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주요국 금융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해 해외를 순방하며 국제적 리더십을 시험하고 있지만 국정 리더십의 취약성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나라엔 그런 인물 안 보여
한나라당은 국회 절반의석을 22석이나 웃도는 거대여당이지만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다. 내부 분열이 한 요인이다. 대선 경선이 끝난 지 15개월이 되도록 친이(親李)네 친박(親朴)이네 하며 서로를 냉소하고, 다음 대선까지는 4년 1개월이나 남았음에도 일찌감치 세(勢)싸움에 빠져 공동의 목표를 내팽개친 듯 보인다.
민주당은 진정한 국익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과 국민을 설득할 대안은 없이 그저 정권 빼앗긴 한풀이에, 반대정권을 부자정권으로 낙인찍고 덜미잡기에 바쁘다. 국민통합 노력은커녕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수도권과 지방을 편 갈라 정치공학적 이익을 챙기려는 행태가 뚜렷하다. 만약 오바마가 그런 정치에다 ‘법 안 지키고 반칙하기’를 밥 먹듯이 했다면 아무리 천하제일의 웅변가라 해도 오늘의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6년 정계에 복귀한 뒤 역대 보수정권에 대해 ‘호남 차별론’을 부각시키며 이를 ‘흑백 인종 차별’에 비유했다. 그의 표현을 빌린다면, 지금의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백인 표’를 얻어야 한다. 그것은 지역으론 영남 표, 계층으론 강남 표일 수 있다.
민주당이 지지율 10%대에서 재기(再起)해 미국 민주당처럼 성공하려면 이런 표에 정면으로 승부를 거는 오바마 식 ‘담대한 도전(Audacious challenge)’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이 국민통합의 정치다. 민주당이 ‘태극기에 충성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국민을 하나로 묶는 정치를 선언하고 행동할 때 그 가능성은 열릴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희망의 리더가 탄생할 수 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당내 통합조차 못 이루는 정치로는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분열과 갈등의 중심이 아니라 통합과 화해의 중심이 되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버리는 인물만이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직 대통령부터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