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워싱턴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를 주최하면서 미국식 의전(儀典)을 선보였다. 14일 백악관 만찬과 15일 전체회의 단체사진 촬영 때 상석에 해당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옆자리를 중국과 브라질 정상에게 내준 것이다. 유럽연합(EU) 의장국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왼쪽 세 번째에 배치돼 상대적으로 홀대를 당했다. 선진 8개국(G8) 회원국인 일본 영국 독일 총리는 아예 뒷줄에 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앙 쪽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줄에 자리를 잡아 미국의 배려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의전은 국가 간의 관계 또는 국가가 관여하는 공식행사에서 지켜야 할 일련의 규범(a set of rules)을 뜻한다. 의전의 기본은 참석자들 간의 서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때문에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각국은 서열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우리 외교통상부도 이 대통령이 우리의 경제순위(13위)에 맞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가장 고무된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 언론은 “중국, G8 곁상서 먹던 시대 지났다”며 미국과 중국의 공생(共生)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하는 뜻에서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말까지 들먹였다. 차이메리카는 하버드대 닐 퍼거슨 교수가 베를린자유대 모리츠 슐라리크 교수와 함께 만든 신조어. 퍼거슨 교수는 전 세계 육지 면적의 13%, 인구의 4분의 1,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양 강대국인 중국과 미국의 협력이 지난 10년간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이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중국의 힘과 위상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퍼거슨 교수는 올 9월 “‘차이메리카 시대’마저도 가까운 장래에 끝나고, 중국이 20년 내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중국의 지배 하에 세계 평화가 유지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차기 미국 정부 아래선 중국이 동아시아 외교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발 빠르게 ‘중국 시대’ 대비에 착수한 듯한 분위기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