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인도’에서 화가 김홍도를 짝사랑하는 기녀를 연기한 추자현은 사실감 넘치는 베드신 디테일을 보여줬다. 사진 제공 수퍼마켓
《16일 오전 9시 10분, 서울의 한 극장에서 영화 ‘미인도’를 봤다. 일요일 이른 아침, 조조상영으로 야한 영화를 본다는 게 좀 민망했지만, 영화는 야했고 주연배우 김민선은 예고대로 ‘파격노출’을 감행했다. 일부 언론은 “과도한 정사 신은 불필요했다”고 비판했지만, 나는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침 넘어갈때 참지 말고 콜라 마시고
야한 장면선 꼬았던 다리 풀지 말라
내 옆에 앉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만난 지 한 달 남짓 된 듯한) 젊은 커플은 정사 장면이 나오는 순간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야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속으로 “왔어! 왔어!”를 외치는 나 같은 아저씨 관객으로선 그들이 새삼 귀엽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 멸종되어 가는) 순진무구한 청춘커플을 위해 매우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한 영화를 지혜롭고 성공적으로 보는 방법은 없을까?
①탄산음료를 마셔라=가장 겸연쩍은 순간은 숨 막히는 정사 신이 막 펼쳐지는 긴장된 대목에서 침이 넘어가는 것이다. “꿀꺽” 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지면서 옆에 앉은 여자친구 보기가 민망해진다. 아, 왜 하필이면 정사 신에서만 침이 넘어가는 걸까.
일부 지혜롭지 못한 남성은 정사 신이 끝날 때까지 침이 넘어가는 걸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되레 정사가 최고조에 다다르는 순간 더 크게 “꿀∼꺼∼덕!” 하는 봇물 터지는 소리와 함께 침이 넘어가게 되는 재앙만 초래할 뿐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탄산음료를 준비하자. 야한 장면이 나오기 20초 전쯤에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빨대를 입에 대고 콜라 한 모금을 살짝 빨아주는 센스. 침 넘김도 예방할 뿐 아니라, ‘난 야한 장면을 여유롭게 즐기는 쿨(cool)한 남자’란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일단 야한 장면이 시작되면 일절 움직임을 자제한다. 꼬았던 다리를 풀고 반대 방향으로 꼬거나, 몸을 뒤척이거나, 심호흡을 하면서 코를 킁킁거리는 등의 별난 행위는 나 스스로 ‘평정심을 잃었거든요’ 하고 광고하는 꼴. 일부 남성은 여유로움을 과시하기 위해 정사 장면이 시시하다는 듯 ‘피식’ 웃거나, 귤을 까 먹거나, 옆에 앉은 여자친구에게 “아유, 저게 뭐야? 가짜로 하는 거 너무 티 난다” 같은 한마디를 날리거나 혹은 “좋아?” 하고 변태처럼 묻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만사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침은 다다르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②관람을 주도하라=정사 신에서 얼굴이 벌게지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면, 그건 야한 장면에 당신 스스로가 굴복당했단 증거다. 야한 장면을 나름의 철학과 분석적 틀을 가지고 바라봄으로써 영화를 지배(control)하려는 진취적 자세가 요구된다.
우선 장면을 디테일하게 뜯어서 보는 시각을 가지도록 한다. ‘미인도’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 초반, 기녀방 대강당에 모인 기녀들은 청나라에서 가져온 춘화집을 흉내 내며 각종 곡예를 하는 듯한 체위를 양반 관객들 앞에서 전시한다. 기녀들의 젖가슴이 일제히 노출되면서 펼쳐지는 몸의 스펙터클. 이때 “허걱!” 하고 소스라치듯 놀라면 안 된다. 평정심을 찾도록 한다. 수많은 가슴 중 자연산은 얼마나 되는지, 심하게 인공적이어서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비현실적인 가슴은 몇 개가 되는지를 꼼꼼히 세어보도록 한다(‘미인도’에도 현대의학의 절대적 도움을 받은 가슴 하나가 등장한다).
또 아랫배나 허벅지에 튼 살은 없는지, 흐르는 땀을 표현한답시고 몸에다 분무기로 물을 지나치게 뿌린 것은 아닌지, 결정적인 노출 장면에서 대역을 쓰진 않았는지, 체위가 지나치게 상투적이진 않은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창의적인 정사 신은 없는지 살펴본다. ‘미인도’의 경우엔 남장여성인 신윤복(김민선)이 운명의 남자인 강무(김남길)와 나누는 사랑 장면 중 상상력이 뛰어난 대목이 하나 나온다. 강무의 등짝 위에다 붓으로 멋진 그림을 그린 신윤복이 자신의 배로 이 그림을 고스란히 판박이 해내는 것.
정사 장면에선 배우들의 보디라인이 이뤄내는 각종 ‘선(線)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려는 미학적 태도도 필요하다. ‘미인도’ 속 대사처럼 “흔들리고 사랑하고 유혹하는 인간의 모습 자체가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나누는 순간 손끝과 발끝은 질투와 욕망의 쌍곡선을 충실히 표현해 내고 있는지, 손끝으로 베개나 이불을 쥐어뜯는 모습을 보여주는 관습적인 수준에 머무른 건 아닌지를 차갑게 판단해 본다.
특히 ‘미인도’의 경우 당대 최고의 화가 김홍도를 짝사랑하는 기녀 역할을 맡은 여배우 추자현에게 주목하시길! 김홍도를 억지로 사랑하는 순간 그녀가 연출해 내는 베개 위 발끝 처리는 단연 2008년 최고의 수확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