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적’에서 두 주인공이 갈등을 시작하는 저택 내부의 거실.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갤러리처럼 꾸며져 현실과 유리된 느낌을 준다. 사진 제공 데이지
고풍스러운 저택 안 초현실적 분위기
‘지옥도’로 변하는 영상적 은유 담아
건축물의 평면도를 들여다보듯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부감(俯瞰) 숏. 공간과 사람이 동등한 비중으로 스크린에 담깁니다. 정수리만 보이는 두 주인공이 현관 문턱을 사이에 두고 마주서서 가시 돋친 대화를 시작합니다.
20일 개봉하는 영화 ‘추적’의 첫 장면입니다. “사람들 이야기만큼 공간의 이야기에 집중해 달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읽힙니다. 이 영화는 한 여자를 사이에 놓고 갈등하는 두 남자가 저택의 밀실 공간에서 벌이는 대결을 그렸습니다.
독특한 조형물로 가득한 거실. 집 주인인 백만장자 추리소설가 앤드루 와이크(마이클 케인)가 “인테리어를 누가 했는지 아느냐”고 거만하게 묻습니다. “당신 아내 작품”이라고 답하는 삼류 배우 마일로 틴들(주드 로)은 그녀의 애인이죠. 틴들은 와이크에게 부인과 이혼할 것을 요구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이 장면의 세트 디자인은 로가 11년 전 출연한 영화 ‘가타카’만큼이나 인상적입니다.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프로덕션 디자이너 팀 하비는 “현실과 유리된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네덜란드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을 디자인 모티브로 참조했다”고 말했습니다.
무한공간에 대한 상상과 상대성이론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에셔의 판화는 평온한 시골 저택이 질투로 인한 지옥으로 변하는 영화 내용과 잘 어울립니다. 두 남자의 본격적인 대결이 벌어지는 밀실 공간도 무시무시한 감옥이라기보다 독특하게 설계된 현대적 미술관 같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영국의 배우 겸 감독 케네스 브래너는 영화 속 저택이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비슷한 이미지를 갖기 원했습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오래된 공장의 외형만 남기고 널찍한 내부 공간을 전시장으로 바꾼 건물이죠. 첫 장면의 고풍스러운 저택 외관과 다음 장면의 포스트모던 스타일 거실의 이질감에 그런 의도가 반영돼 있습니다.
밀실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인 ‘큐브’(1997년) ‘패닉룸’(2002년) ‘1408’(2007년)에 비해 ‘추적’은 이야기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배경이 되는 공간의 디자인을 이야기 흐름에 맞춰 조율한 제작진의 치밀함은 고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년)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연상시킵니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효시로 꼽히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로베르토 비네 감독은 그로테스크한 표현주의 회화와 건축의 특징을 극단적으로 왜곡된 조명을 활용한 세련된 이미지로 스크린에 구현해 찬사를 받았습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