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열린 미국 의회 자동차산업 청문회에 미국 3대 자동차회사 사장들이 나란히 출석했다. 한 번만 봐주면 다시는 ‘구걸’하지 않겠다고 읍소하는 모습이 미국 불경기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미국 자동차 회사의 몰락을 강 건너 불 보듯 하기에는 우리 형편이 더 절박하다. 건설업 구조조정이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선업과 철강업 구조조정이 거론되고 있고 조만간 금융권도 대상이 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온갖 암울한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제 낙관적인 전망은 허무 개그의 소재로 전락했다.
과연 글로벌 경제는 속절없이 장기 불황의 늪으로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번 불경기는 과거와 다른 변종 바이러스라서 치료할 백신은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은 처방전이 쌓여 있다. 대공황 이래 지난 80년간 현대 경제학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불황과 금융위기를 극복한 역사적 경험과 사례들이 있다.
대공황으로 불황 중 가장 처참하다는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에 이어 초인플레이션, 그리고 영국의 국가부도 사태와 미국과 아시아의 파국적인 금융위기도 체험했다.
디지털 시대답게 이번 불경기의 확산 속도와 규모는 아날로그 시대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인 시장의 탐욕과 붕괴 그리고 공포에 의해 초토화되는 기본적인 패턴은 다를 것이 없다. 레퍼토리는 같은데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가사만 다를 따름이다.
설사 불경기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증세가 달라진다 해도 금융 경색과 디플레이션 혹은 스태그플레이션의 합병증일 것이다. 이 모든 병은 이미 한 번씩 겪어 본 터라 상황 진단만 정확히 한다면 과거 경험을 통해 알맞은 치료제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며칠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대공황을 겪은 노인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배급 행렬,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수많은 젊은이들, 1주일에 1달러를 받아도 가정부로 일하겠다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들이 잔혹했던 대공황 시절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이런 기사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미국인들의 공포를 대변하고 있다. 미국은 대공황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80년간 축적된 불경기 극복 경험이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선례만큼 가장 안전한 처방은 없다. 다만 늦기 전에 제대로 된 처방을 찾기 바랄 뿐이다.
이상진 신영투자신탁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