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 많아 예측 무의미”
제도권 전문가 입닫아
“코스피 저점 크게 하락”
인터넷 주장 혼란 가중
《요즘 증권시장은 ‘정보의 유통’이라는 측면에서는 중세의 암흑시대로 돌아간 듯하다. 투자자들은 ‘도대체 바닥이 언제일까’에 대한 정보를 원하지만 제도권의 애널리스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하고 있고 그 빈 공간을 익명의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이 차지하고 있다. 사이버 애널리스트나 논객들은 불안한 시기에 예언가들이 ‘정감록’ 등 도참비기(圖讖秘記)를 내놓으며 백성을 사로잡은 것처럼 묵시록 같은 경제붕괴론이나 증시붕괴론을 내놓고 있다. 》
증시 전문가들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제도권에서 실명으로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전망들을 내놓고 이를 토대로 논쟁이 촉발돼야 경제를 둘러싼 논의가 수렴될 텐데 제도권이 입을 닫으면서 논의의 구조가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제도권 증시 전망 실종
19일까지 불안하게 유지돼 온 코스피 1,000 선이 미국 뉴욕 증시가 폭락한 여파로 20일 가차없이 무너지자 투자자들의 관심은 증시 바닥은 언제, 어디쯤인지에 쏠렸다. 증권 관련 웹사이트에도 “정말 코스피 500 선이 오는 것이냐” “지금이라도 주식, 펀드 다 정리하는 게 올바른 길일까”라는 공포에 짓눌린 글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증시 전망을 전문적인 ‘업(業)’으로 삼고 있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이날 증시 전망을 하는 것 자체를 무척 꺼렸다.
A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투자 심리가 극도로 얼어붙어 있는 지금 같은 패닉(정신적 공황) 상태에서는 향후 주가를 맞히기가 정말 어렵다. 주가를 예측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B증권사의 투자분석부장은 “앞으로 시간과의 싸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답한 뒤 “굳이 코스피 전망을 한다면 900 선이 깨질 우려도 있다고 전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주가가 폭락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연말까지 코스피 1,400∼1,500 간다며 주식을 사라고 권했던 증권사들은 다 어디 갔느냐”는 불만도 나왔다.
○ 폭락 주장 익명의 글 온라인 지배
글로벌 금융 불안이 지속되고 있고 경기침체가 증시에 다시 악영향을 미치면서 증시 변동성이 커지는 바람에 증권사의 증시 전망이 틀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졌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 사이에서 증권사에 대한 신뢰가 크게 하락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포털사이트에서 활약하는 이른바 ‘사이버 애널리스트’다. 그간 경제위기의 진행 과정을 일부 예견한 것으로 유명해진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한 논객은 지난달 “코스피 1차 저점이 820 선, 2차 저점은 500 선”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한 데 이어 최근에는 “부동산 값이 폭락하는 등 상황이 더 악화되면 500 선 밑으로도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SDE’란 필명의 논객이 최근 정부가 밝힌 경제위기 극복 대책에 대해 “이런 땜질식 정책만 나오면 국가신용도가 급속히 추락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경제위기 심화나 주가와 부동산 대폭락을 예견하는 익명의 글들이 사이버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공인회계사는 “비제도권의 주장을 살펴보면 황당한 부분이 너무 많으며 생각보다 근거가 취약하다”며 “그러나 제도권은 침묵하고 ‘시장 붕괴’를 주장하면 정론(正論) 대접을 받는 이상한 풍토가 조성되면서 증시의 담론 구조가 왜곡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