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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100년-위안의 詩]이영주 ‘지붕 위로 흘러가는 방’

입력 | 2008-11-21 02:57: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여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진이 막 일어났을 때보다, 지진이 끝난 한참 후 다시 아주 먼 곳에서부터 천천히 밀려오는 땅의 울림을 여진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그때 가서야 땅이 갈라진 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멀미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 멀미는 지도에는 표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지도에는 땅에 묻혀 아득한 곳을 흘러 다닐 ‘지진’을 표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이 이성으로 구획한 영역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에서 생겨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면에서 빚어진 시란 이처럼 인간이 이성과 합리로 지도에는 표기할 수 없는 멀미와 지진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좋은 시란 항상 독자에게 새로운 멀미를 제공해 주고 언어를 통해 자신만의 항해를 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시는 단 66개의 단어로만 쓰인 짧은 시이지만 잔잔한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시를 읽고 나면 여진을 한참 겪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목부터가 이미 한 줄의 시가 되어버린 시가 있습니다. ‘지붕 위로 흘러가는 방’이란 제목만 한참 들여다보고 있어도 마음에서 이상한 소요가 시작되는 것을 눈치채는 독자라면 이 시가 주려는 시심을 다 받아가는 셈입니다. 아마도 화자는 어릴 적 어머니의 등에 업힌 채 어머니가 프라이팬에 노란 달걀을 부치시는 걸 잊지 않으려고 그동안 노란 달을 몇 번이나 올려다보았을지, 수없이 많은 방을 비우고 채워가면서 ‘비린 달을 게워가며’ 살아왔을 겁니다. 방은 인간이 눈만 감고 있으면 어디든지 흘러갈 수 있게 해주는 허공이라는 걸 오래전 깨달아 버린 시인은 조용히 지붕 위에 올라가 속삭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시를 음악으로 듣는 우리의 눈동자 속에도 그런 ‘노란 달’이 떠야 할 시간인 것입니다.

김경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