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나 친척 사이에 조상에 대한 제사(祭祀)만큼 말 많고 탈 많은 일도 드물다. 제사를 모시는 것은 장남의 운명이라 쳐도 제사 방식과 제상(祭床) 준비 등에 대한 의견만도 이만저만 분분한 게 아니다. 형제간에 분쟁이 생겨 얼굴을 영영 안 보고 사는 경우도 있다. ‘제사 주재권’은 ‘권리’이자 ‘멍에’다. 장남은 신랑감으로 인기가 없는 게 변함없는 세태다. ‘몇 대 종손’이라는 것도 자랑거리가 못된다. 부모와 조상을 함께 모셔야 하는 경우는 최악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복형제 간에 아버지 제사를 서로 모시겠다고 법정싸움(유체 인도 소송)이 붙어 대법원에서 승패를 가렸다.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이 재판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구성해 격론을 벌여야 했다. 민법에 제사 주재자에 대한 명백한 규정이 없는 탓이다. 대법원은 “상속인들의 협의를 최우선으로 하되, 합의가 안 되면 적서(嫡庶)를 불문하고 장남이, 장남이 없으면 장손자가, 아들이 없으면 장녀가 맡아야 한다”고 판결해 본처 소생 장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 같은 결론에 대법관 13명 중 무려 6명이 반대했을 만큼 논란이 치열했다고 한다.
▷이번 판결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통상 종손이 제사 주재자가 된다”는 종전 판례는 앞으로 적용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본처 소생 C 씨의 제사 주재권은 종전 판례에 의해서나 이번 판결에 의해서나 변동이 없다. 새 판례에 의해 적자와 서자의 구별이 없어졌어도 59세인 C 씨는 후처 소생보다 나이가 많아 여전히 장남이고 종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판결은 서자와 딸도 제사를 모실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사 문제에 평등주의를 구현한 것이다.
▷새 판례에 대해 사회상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들도 “기존 판례와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법관은 ‘상속인들 간에 합의가 안 될 경우 아예 상속인들의 다수결로 제사 주재자를 뽑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대한 일정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남녀차별금지법 제정과 호주제 폐지에 이은 진화(進化)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