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최근 자서전 ‘동행’에서 남편을 박해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내 육영수 여사에 대해 “따뜻한 성품을 지녔던 분”이라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소설가 남지심 씨는 육 여사 평전 ‘자비의 향기’에서 “매년 육 여사 묘소를 참배하는 2000여 명이 평범한 서민이라서 놀랍다”며 “30여 년 시간을 거스르는 추모행렬은 비정하고 허망한 권력의 속성을 무너뜨리는 불가사의한 힘”이라고 썼다.
▷작가 홍하상 씨는 육 여사가 오랜 세월 서민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은 ‘진심(眞心)의 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늘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고 고통 받는 이들의 편이 되어 눈물을 흘렸던 여사의 진정성이야말로 국민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장 정치적인 행위였다”(‘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 육영수’)는 것이다. 프로 정치컨설턴트나 홍보전문가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육 여사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닉슨, 포드, 레이건, 클린턴 등 4명의 대통령 밑에서 백악관공보비서로 일한 데이비드 거건은 저서 ‘권력에의 증언(Eyewitness to power·2001년)’에서 훌륭한 대통령의 첫째 조건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꼽았다. 레이건의 경우도 그랬다. 경제가 수렁에서 헤맬 때 레이건은 ‘미국을 구하러 워싱턴에 온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로 국민의 마음에 새겨져 성공할 수 있었다. 국민을 감동케 하는 능력이라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진심이다.
▷청와대가 8·15 건국사에 이어 내년 신년사 작성에도 유명 컨설팅사를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메시지 내용은 물론 문장과 단어까지 신경을 써서 국민에게 뭔가 감동을 주기 위해서겠지만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기교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내용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청와대에서 외부에 신년사 콘텐츠를 빌리는 것부터가 국민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며 “그것만 알면 콘텐츠는 저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진심으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메시지는 없을 것 같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