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공과대 건물 뒤편 ‘한옥짓기’ 수업 현장에서 만난 전봉희 교수와 학생들.
‘서울대에 한옥짓기’ 전봉희교수 “캠퍼스에 전통 상징물 있어야”
초겨울 쌀쌀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던 22일 아침, 빠알간 단풍이 내려앉은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공과대 건물 뒤뜰에서 검정색 작업복을 맞춰 입은 스무 명 남짓한 젊은이들이 대패와 끌, 망치를 들고 분주히 손을 놀린다. 그 옆에는 기둥 위에 지붕만 얹혀진 두 칸짜리 기와집이 들어서고 있다. 바로 이 학교 건축학과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한옥 짓기’ 수업(한국건축사연구방법론) 현장이다. 잘 마른 나무 기둥을 목수 뺨치게 매만지는 이들은 인부가 아니라 이 학교 대학원생들. 강의 시간은 매주 토요일 하루 종일이다. 해 뜰 때서부터 해질 때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수업에 참가한다. 이론 위주로 진행되는 국내 건축학과 풍토에서 직접 한옥을 짓는 것은 서울대가 처음이다.
이 건물은 서울대안에 처음 들어서는 한옥이다. 14.58㎡(4평) 크기의 이 건물의 용도 및 이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위치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이동 후 재조립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더 어울리는 장소로 옮겨질 수 있다.
독특한 수업을 만들어낸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전봉희(45) 교수를 만나봤다. 추워서 빨개진 얼굴로 학생들 틈에서 똑같이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이리저리 설계도를 살피던 중년의 남자가 바로 전 교수였다.
“오늘 목표는 중간에 들어가는 수장재를 집어넣는 것입니다. 한옥을 지을 때는 큰 절단은 기계톱으로 하지만 작은 홈은 전부 손으로 조각하듯이 해야 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우리 학생들도 전부 처음 해보는 일이죠.”
이 날은 지붕공사를 마치고 마루와 수장재 조립을 하고 있었다. 애초 강의 계획안에 의하면 이날 온돌을 설치하고 흙벽치기를 해야 하는데, 조금 늦은 듯 하다. 매주 토요일마다 작업을 하고도 시간이 모자라 보충 수업을 2시간이나 했다. 모델이 된 건물은 창덕궁 폄우사다. 폄우란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고친다’는 뜻으로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이라고 한다. 15주가 되는 오는 12월 13일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옥 수업의 취지는 우리 색깔의 캠퍼스를 만들자는 것에서 시작됐다. 중국 베이징 대학의 정문이나 도쿄대의 아카몬처럼 전통의 멋을 느끼게 해줄 상징물이 서울대에는 없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1970년대 서울대가 산업화 시기 기술 관료를 키워낸 공장과 같은 캠퍼스였다면 이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키워낼 수 있는 놀이터여야 해요. 비록 네 평 남짓한 조그마한 한옥이지만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그동안 이론 수업의 갈증 때문이었을 까. 한옥 짓기를 한다고 하자 학생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었다. 수강 신청 시작 5분 만에 정원이 찼다. 현장에서 만나본 학생들의 열의도 대단했다. 끌과 망치로 창문 부위가 될 하임방에 홈을 파던 한욱빈(박사과정 1년차) 씨는 “운이 좋아서 이 수업을 하고 있다”며 “직접 한옥을 짓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작업에는 남녀가 따로 없었다. 전체 인원의 3분의 1인 7명이 여학생이다. 김지혜(박사과정 3학기) 씨는 “도면과 견학으로만 배우던 것과 실제로 작업하면서 배우는 것은 많이 달랐다”며 “만들면서 보니 한옥의 좋은 점은 현대식 건물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금은 능숙하게 나무를 다루는 학생들도 처음에는 서툴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연장을 처음 잡아본 학생들이 다수였고 자그마한 홈 하나 파는 데에도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렸다고.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6 주째 있었던 상량식이었다고 한다.
“나무는 나무대로 도리는 도리대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깎았는데, 기둥을 세우고 끼우니 그게 다 맞춰들어가는 겁니다. 아이들이 기둥을 끌어안고 ‘내가 깎은 것이다. 끼워진다’ 고 눈물까지 흘리더군요. 그렇게 다 끼워놓고 나서 다음날 상량식을 했어요. 상량문은 한문을 가르치는 선생님(서울대학교 자하서당의 김철훈 선생)이 쓰셨습니다.”
수업이 있기 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도 많았다. 신영훈 한옥문화원장, 이재호 도편수(우두머리 목수), 여영대 부편수, 이근복 번와장(기와 장인), 심용식 창호장 등 각 분야의 국내 최고 장인들이 앞 다퉈 참여했다.
“서울대가 우리 것에 관심을 가져 준 데 고맙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모신 목수님도 강원도 영월 현장에서 이 일을 위해 새벽같이 매주 토요일에 오셨습니다. 끌 잡는 법, 대패 날 가는 법, 끼우는 법, 망치 잡는 법 까지 하나하나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셨죠. 우리나라 기술자들이 대개 자기 지식을 절대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 법인데 하나라도 전수하려고 굉장히 열심입니다. 오늘도 각지에서 장인들이 전화를 주셔서 격려해 주시면서 ‘꿈이냐 생시냐, 우리 때는 괄시를 받았는데 서울대에서 이런 일을 하니, 우리도 이제 전문적인 기술자로 인정받게 될 것 같다’고 기뻐하시더군요.”
‘한옥 애호가’인 전 교수는 왜 한옥이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했다.
“한옥이 바로 미래 지향적인 스타일입니다. 21세기 화두가 ‘지속가능한 건축’과 ‘CO2 절감’입니다. 새로 지을 때 부술 때 폐기물이 안 나오는 건축 그것이 대안인데요. 한옥을 보시면 나무 기와 돌 흙 종이 모두 완벽하게 자연 친화적인 재료들입니다. 바로 그런 면 때문에 한옥이 세계적인 주택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전 교수는 주미 한국 대사관에서 지난 10월 23일부터 11월 4일까지 미국 각 도시에서 개최한 한옥전과 지난해 말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연 한옥전을 거론했다. 특히 이들 한옥전에서는 개량 한옥인 미 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Habib House)가 공개된 바 있다.
“당시 대사 부인인 리사 버시바우 여사가 전 세계 대사관 중 그 나라 양식으로 지어진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씀하면서 이토록 전통적이면서도 편리한 건물은 처음이라고 극찬했습니다. 하비브 하우스는 난방도 들어와 있고 입식으로 돼 있지만,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누구나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인데요. 정치가나 행정가들은 꼭 미대사관저를 가보셨으면 합니다. 가셔서 우리 어린시절 보던 못살고 구질구질했던 그 한옥이 아니라, 이렇게 편리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한옥이 있다는 걸 느껴봤으면 해요. 우리 세대에도 후대에 물려줄 멋진 한옥 건물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 교수에게 한옥 짓기 수업을 계속할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실습 용도로는 5년에 한 번이 적당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유~!(손사래를 치면서) 토요일에 아무 일도 못하잖아요. 저 학생들도 무조건 하루 종일 토요일을 비우고 있습니다. 수업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한 학생이 ‘중요한 결혼식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는데 미안하지만 빠지라고 했어요.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서 5년에 한번 해 볼 까 합니다. 학교에 영빈관을 하나 짓겠다는 움직임은 있는데, 학생들도 부분적으로 참여는 하겠지만 전문적인 목수 위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모든 작업과정은 일일이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으로 남겨 앞으로 수업 시간에 활용할 예정이다. 아직 조그만 한옥 휴게실의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다. 내년 봄 좋은 자리를 찾아서 옮겨 간 뒤 사용처가 정해지면 이름도 그에 맞춰 정할 것이라고 한다.
“네 평 남짓한 마루방이기 때문에 아주 추운 계절은 어렵지만 10명 15명 정도의 작은 수업이나 세미나 용도로 좋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마루에 걸터앉아 쉬어도 좋구요. 작지만 우리 캠퍼스의 풍경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영상=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