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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한태]공공미술로 ‘한국의 몽마르트르’ 만들려면

입력 | 2008-11-25 02:59:00


공공미술(public arts)엔 원래 작품을 전시장이나 화랑이 아닌 일상 삶의 공간 속에 설치하려는 문화예술적 취지가 깃들어 있다. 하지만 달동네 같은 낙후지역을 벽화로 장식하려는 사례에서처럼 공공미술의 본래 뜻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사례가 늘고 있어 안타깝다. 일부 동네에서는 골목 담벼락마다 울긋불긋 현란한 벽화를 그린 뒤로 볼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제 거주하는 주민의 말대로 북적대는 관광객이 시 당국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낡은 집에 계속 살아야 하는 주민에겐 고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시환경을 개선하려고 문화관광부가 2006년부터 실시한 ‘아트 인 시티(Art in City)’ 프로젝트는 지방자치단체를 자극해 과열경쟁까지 벌어질 정도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뒤편 낙산지역 곳곳에 그린 벽화, 전북 고창군 돋음별 마을의 국화꽃 벽화, 광주 비엔날레에서 눈길을 끈 광주 동구 대인시장의 복덕방 프로젝트는 주민의 자긍심을 바탕으로 흥행(?)에 성공한 긍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공공미술 열풍에 시민단체도 열성적이어서 달동네도 잘 가꾸면 아름다워진다며 정부의 지원 아래 상금까지 내걸고 공모전을 벌인다.

이렇듯 해당 지역 시민과 관광객은 물론 누리꾼에게까지 열광적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의 목마름이 근본 원인이다. 화랑은 멀고 시간도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고 싶어도 범접할 수 없는 미술관은 급속한 도시화의 그늘에서 고단한 일상에 지친 시민의 문화적 향수와는 간극이 너무 크다. 그래서 매일 다니는 거리나 가까운 시장 등 일상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오아시스를 공공미술에서나마 찾으려는 절박한 몸부림일 수 있다.

그러나 공공미술의 밝은 빛이 눈부실수록 어두운 그림자는 그만큼 짙을 수밖에 없는 양면성에 유의해야 진정한 아름다움의 균형이 이뤄진다. 빛난다고 모두 금(金)은 아니라는 서양 속담처럼 형형색색 요란한 공공미술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시각공해로 전락한다. 짚신에 국화 그리기 식의 어리석음을 피해야 함은 물론이고 내 눈의 즐거움만 알고 남의 사생활이나 재산권은 모른 체하는 건 곤란하다. 낡은 짚신에 성급히 국화부터 그리기 전에 짚신부터 업그레이드하는 게 일머리의 순서이다. 내게는 아름다운 것이 남에겐 조금이라도 불편과 손해가 될 수 있다면 이웃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야 한다.

외국의 수준 높은 문화관광객까지 멀리에서 찾아올 정도의 ‘한국의 몽마르트르’를 만들려면 특정 이념으로 덧칠된 설익은 내용, 허황된 인기에 편승한 포퓰리즘 정책, 일회용 무대장치 같은 졸속 제작을 피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단체나 누리꾼의 성숙한 미(美)의식이 전제돼야 한다. 주민의 애정으로 삶 속에 자연스럽게 오래도록 뿌리내릴 공공미술만이 일과성 동네잔치가 아닌 글로벌 문화예술로 굳게 자리매김하고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을 감동시킨다.

성급하게 그리는 거리벽화는 한국 문화예술의 저급성만 드러낼 뿐이다. 거리의 벽화가 한쪽에서 보면 예술 같아도 다른 한쪽에는 사생활의 불편과 재산권의 손해를 끼치는 일방통행이라면 상생과 조화,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 보존과 개발의 틈에서 공공의 거리미술이 더는 이념이나 졸속정책의 희생양으로 방치돼선 안 된다.

유한태 숙명여대 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