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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문제에 기업 볼모 삼아… 경협 전반 되짚어볼 때”

입력 | 2008-11-25 02:59:00

현대아산 ‘경협 상징’서 최대 피해자로북한 당국이 다음 달부터 개성관광을 중단한다고 24일 발표하자 현대아산 직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아산 본사에 개성공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걸려 있다. 변영욱 기자


《경제계는 24일 북한의 일방적 통보 내용이 전해지자 대북(對北) 경제협력사업의 한계와 리스크(위험성)를 다시 한 번 절감하는 분위기다.

특히 경제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경협사업이 번번이 ‘볼모’가 됐던 전례가 되풀이됐다는 점에서 남북경협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남북경협 과정에서 북한 측이 뒷돈을 요구하거나 자신들의 요구에 맞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행동해 곤혹스러운 사례가 적지 않았다”면서 “이런 리스크와 불확실성, 상거래의 전제조건인 신뢰의 부족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대기업이 대북 사업에 적극 나서지 않았던 것”이라고 전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개성공단 조성사업이 완료되지 않았고,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이라며 “우리 정부는 남북 경협사업에서 좀 더 확고한 원칙을 바탕으로 ‘정책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이미 247억 순손실… 망연자실

■ 현대아산 반응

북한의 일방적 결정으로 금강산관광에 이어 개성관광까지 다음 달부터 중단됨에 따라 현대아산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 회사의 대북사업이 존폐(存廢) 기로에 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대중(DJ) 정부 당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시작한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 이어 현정은 현 현대그룹 회장에 이르기까지 현대그룹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 전체 경영에 미치는 타격도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계에서는 “현대아산은 한때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나 대북사업의 리스크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추진한 결과 결국 ‘최대 피해자’가 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대그룹이 DJ 정부 당시 ‘대북 불법송금 사건’ 등에 연루돼 유무형의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돌아온 대가가 너무 혹독한 셈이다.

현대아산은 24일 “금강산관광을 포함해 개성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소중한 사업인데 중단 또는 취소되는 것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남북이 협력해서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아산의 기대와는 달리 이번 북한의 조치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북한경제 전문가는 “개성공단만 하더라도 북측은 그동안 ‘김정일 장군이 특별히 허락한 사업’이라며 정치적 표현을 써왔으나 남측에서는 경제사업으로 접근하는 등 시각차가 극명했다”며 “지금으로서는 남북 어느 곳도 ‘기(氣) 싸움’에서 밀릴 수 없기 때문에 남북 경협사업은 상당 기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아산은 이날 북측 발표가 전해진 뒤 망연자실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현대아산은 올해 7월 남측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되면서 올해 매출 손실이 800억 원에 이르고 1∼9월 247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경영난에 처해 있다. 여기에 개성관광 및 개성공단 조성사업까지 차질이 빚어지면서 경영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한편 현대아산은 북측의 개성관광 중단 통보에 따라 이달 30일까지 관광을 실시한 뒤 12월 1일부터는 중단하고 관련 인원도 철수하기로 했다. 또 개성관광 예약 고객이 예약을 취소할 때에는 전액 환불해 줄 방침이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겨우 버텨왔는데… 문 닫아야 하나”

■ 개성공단 기업 반응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측 기업 대표들은 북한의 잇따른 강경 조치에 크게 곤혹스러워했다.

이들은 “남북의 정치적 대립에 개성공단이 휘말리면 앞으로 사업하기가 힘들다”고 걱정스러워했다. 또 남북 당국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북한과의 사업을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 본사를 둔 부품업체 A사 임원은 “북한의 대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현 상태에서는 내년 사업계획도 짜지 못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도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고용을 늘리고 수입을 얻는 만큼 개성공단을 폐쇄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북측 근로자 375명을 고용해 개성공단에서 가전제품 부품을 생산하는 B사 사장은 “만약 개성공단에서 완전히 철수하면 중국으로 가야 하는데 중국의 인건비와 물류비가 많이 올라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경기 침체와 개성공단 문제가 겹치면서 올해 부품 주문량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직원 월급을 동결하고 긴축 경영을 통해 겨우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이임동 개성공단기업협의회 사무국장은 “개성공단의 인원을 줄이는 북한의 조치는 이미 예견됐다”며 “남북이 정치적으로 계속 대립한다면 개성공단 문제는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대한 신인도가 떨어지면서 주문량이 크게 줄어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기업도 많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4∼19일 개성공단에 입주했거나 입주 예정인 기업 63개사를 대상으로 ‘남북관계 경색이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88.9%가 ‘매우 심각하다’ 혹은 ‘심각하다’고 답했다.

중기중앙회는 24일 공식 논평을 통해 “순수 민간 차원의 남북경협 활동은 남북 당국의 정치적 상황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보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동아일보 사진부 변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