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 전임 유도훈 감독이 갑자기 사퇴했을 때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시즌 개막을 채 두 달도 안 남긴 상태에서 선장을 잃은 안양 KT&G는 불안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라운드에 접어든 요즘, KT&G는 거침없는 4연승을 내달리며 순위표 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시적인 상승세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무엇보다 게임 내용이 좋고 팀 짜임새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
김호겸 사무국장은 25일 이상범(39·사진) 감독대행에 대해 “빠른 시간에 팀을 재정비했고 게임도 재미있어 팬들이 좋아한다. 구단의 절대적인 목표에 부합하면서 가고 있다”고 높이 평가한 뒤 “다른 사람을 감독으로 영입할 생각은 전혀 없다. 시즌 중 고위층의 의견을 여쭤 정식 감독으로 임명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대행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이 감독대행은 아직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스스로 “한 게임, 한 게임 치르는데 정신이 없다. 중반 라운드 이후 어떻게 운영해야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고 말할 정도.
그러나 그는 다른 감독들과 다른 무엇이 있다. 이 감독대행은 “전임 유 감독님께도 가끔씩 전화를 드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게 옳은 것인지 묻는다”고 말한다. 대개 감독을 맡으면 자신의 뜻대로, 철학대로 팀을 움직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더 주목할 건 ‘선수들에게 내 판단이 옳았느냐’고 묻는다는 것. 교체 타이밍이나 작전에 대해 선수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건 물론이고, 그 결과를 놓고 선수들과 대화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감독 권위’가 절대적인 다른 구단, 다른 종목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이 감독대행의 이 같은 스타일은 KT&G의 전신인 서울방송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안양SBS, 안양 KT&G까지 계속 한 팀에서 머물러 선수들과 누구보다 가까운 덕분이기도 하지만 기존 ‘감독의 모습’과는 일정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 감독대행은 이 같은 지도 스타일에 대해 “만약 정식 감독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면서 “선수들에게 때론 감춰야할 건 감추겠지만 내가 100% 옳은 게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은 후 채 몇 달도 되지 않아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관련기사]‘거인킬러’ 모비스, 동부도 잡았다
[관련기사]손바닥 뒤집 듯 뒤집는 KBL 선발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