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스물다섯의 젊은이는 자신감이 넘쳤다. 혈기왕성했고, 체력과 등반 기술 모두 최고라고 자부했다.
세상에 못 오를 산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첫 히말라야 등반에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에베레스트(8850m)를 겨냥했다. 어렵기로 소문난 남서벽을 겨울에 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참한 실패였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힘 한 번 제대로 못썼다. 바람과 추위는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하산 길에 50m 넘게 굴러 떨어져 헬멧과 고글을 모두 잃었으며 같이 간 후배는 발목이 부러졌고 이들이 자던 텐트는 바람에 날아갔다.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지 안 봐도 뻔했다. 그는 돌아와 엄청난 훈련을 했고 만반의 준비 끝에 정확히 1년 만에 다시 에베레스트로 갔다. 그러나 해발 7700m 부근에서 함께 오르던 동료 한 명이 추락했다. 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추락사한 동료는 하산 루트에 죽음의 흔적을 몇백 m에 걸쳐 선명하게 남겨놓았다. 붉은 핏자국들, 떨어진 장갑과 장비, 신발 한 짝. 그는 처음으로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이 젊은이가 산악인 엄홍길이고 1985년, 1986년 얘기다. 그는 1988년에야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지난해 로체샤르(8400m)를 오르며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 16개를 모두 완등하는 데는 꼭 20년이 걸렸다.
얼마 전 히말라야 등반을 정리하는 사진집을 낸 그는 “지금 살아 있는 게 기적 같은 일”이라 했다. 그만큼 죽음과 삶의 경계를 숱하게 넘나들었다.
실패가 성공만큼 많았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그는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 등정에 38번 도전했고 이 중 절반 가까운 18번을 실패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그는 ‘도전’이라고 했다. 또 세상에서 가장 힘든 도전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라 했다.
엄홍길이 이제 고산 등반을 접고 제2의 인생에 도전을 시작한다. 5월 설립한 ‘엄홍길 휴먼재단’을 통해 열악한 환경의 히말라야 산간오지의 교육, 의료, 보건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다. 그의 또 다른 도전이 기대된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