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고 옛 신문을 뒤적거렸는데 아래와 같은 1면 톱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초중고교 조기방학…예년보다 2주쯤 당겨(동아일보 1973년 11월 28일) 초중고교 4일부터 방학…부산 경남 전남 제주 제외, 개학 추후 결정(조선일보 1973년 11월 29일)
옆에는 ‘네온사인 점등금지…실내풀장도 전면영업 못해’ 또는 ‘광고네온사인 금지…테니스장, 실내 풀 조명도’라는 기사가 각각 붙어 있다.
정부의 에너지대책실무위원회가 11월 28일 발표한 내용이다. 한 줄 한 줄 읽어보니 이런 대목도 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수는 국민학교 六千여개교, 중학교 二千개교, 고등학교 一千개교 등 모두 九千二百개교 十四萬여 교실에 달하며 이들 학교가 一개월간 방학을 연장하는 경우 연탄 十五萬t이 절약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의 조치는 같은 해 10월 6일 시작된 중동전쟁이 석유전쟁으로 번진 정세와 관련이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열흘 뒤 원유가격을 배럴당 3달러 2센트에서 3달러 65센트로 17% 올렸다.
다음 날에는 이스라엘이 아랍 점령지역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의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원유 생산을 매달 5%씩 감산하기로 결정했다.
아랍 산유국이 석유를 정치무기로 활용하면서 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고급승용차 운행금지 및 접객업소 영업시간 단축을 뼈대로 하는 에너지소비 절약대책을 11월 24일 발표했다.
이런 방안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정부는 나흘 뒤에 2차 대책을 확정한 것이다. 골프장 폐쇄방안도 논의했지만 (외국) 관광객의 출입을 고려해 일단 보류하고 국내 골퍼들의 자숙에 맡기기로 했다.
제1차 석유파동은 세계적 불황과 인플레이션을 불렀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74년 8.0%, 1975년 7.1%였으니 다른 국가보다 영향을 적게 받은 셈이다.
하지만 제2차 석유파동 때는 상황이 심각했다. OPEC가 1978년 12월 인상계획을 발표하고 특히 이란이 수출을 중단하면서 원유가격이 배럴당 20달러를 넘고 현물시장에서는 40달러까지 치솟았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79년 6.4%에서 1980년 ―5.7%로 뚝 떨어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원유가격이 하락세여서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