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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그룹들, 인적 감원 없을 듯

입력 | 2008-11-28 18:24:00


외환위기 당시 많은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에서 대규모 감원(減員) 바람이 불었다. 내로라하는 주요 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직원이 눈물을 흘리며 직장을 떠나야 했고 입사 합격 통지를 받고도 취소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미국발(發)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로 최근 미국 등 선진국 기업에서는 외환위기 당시의 한국을 연상케 하는 메가톤급 인원 감축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 직장인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외환위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인적 구조조정을 자제하거나 최소화하면서 정면 돌파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내 재계에서 위상이 높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최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경제가)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면 안 된다. 어렵다고 사람 안 뽑으면 안 된다"며 인위적 감원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분명히 밝힌 사실이 동아일보의 특종 보도로 공개되면서 다른 대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위적 감원은 하지하책(下之下策)"

동아일보 산업부가 28일 한국의 자산규모 기준 10대 그룹(민영화된 공기업 포함)을 상대로 인위적 감원에 대한 그룹별 방침을 긴급 취재한 결과 한결 같이 '과거 외환위기 때와 같은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 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은 아직 내년 경영방침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인위적 감원은 최후 중의 최후의 수단'이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삼성의 한 임원은 "지금 (인건비 좀 아끼려고) 사람을 내보내면 나중에 인재를 구하기는 데 비용이 더 든다"며 "외환위기 때는 회사의 존폐가 걸린 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약 30% 인원 감축'이란 극약 처방을 한 것이고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도 글로벌 경제 위기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고 있지만 인력 구조조정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SK그룹은 내년 채용 규모를 올해보다 5∼10% 가량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계열사 CEO들에게 "경영 환경 악화가 어렵지만 어려운 때가 기회다. 중장기적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인력과 신기술 개발과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당부했다.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의 확고한 방침에 따라 인위적 감원 대신 다양한 혁신을 통해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계열사별로 마련 중이다.

롯데그룹 측도 "올해 경제 위기 속에서도 그룹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인 1500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공채했다"며 "기존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은 당연히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 GS 현대중공업 KT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나머지 10대 그룹도 "현재 감원 등의 인적 구조조정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대기업에도 비슷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화그룹은 '인위적 구조조정은 안 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우고 대우조선 노조의 고용승계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외환위기 때와 무엇이 달라졌나

10대 그룹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이 '인위적 감원 없이 경제난을 극복하자'는 방침을 정한 것은 외환위기 때 이뤄진 대규모 정리해고 및 희망퇴직 등이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조직에 대한 충성도 약화 등의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다음부터 노조 조합원들 사이에는 '언제 회사를 떠나게 될지 모르는 마당에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내자'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현대차 노조를 더욱 강성으로 만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외환위기 때의 학습효과 때문에 장래의 사업기회에 대비하려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기업들이 알게 됐다"며 "근로자들도 회사를 나가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경험을 터득해 노사 모두 '양보의 지혜'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또 주요 기업의 부채비율이 외환위기 때와 달리 눈에 띄게 낮아져 재무구조가 개선된 데다 위기가 '갑자기 닥쳤던' 10여 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위기 징후'가 미리 나타나면서 상당히 대비할 시간이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만 10위 권 밖의 그룹이나 금융회사 가운데는 내년 신규 채용을 중단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다소 불안한 조짐도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사회적 분위기가 '사람 나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는 상황으로 가면 안 된다. 선순환의 경제극복 방안을 추진해 나가도록 고통분담의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산업부 종합

정리=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