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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백성-신하와 멀어진 왕은…

입력 | 2008-11-29 03:03:00


어떤 나라에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즉위하고 난 뒤, 나라의 흩어진 기강을 바로잡고 왕의 권위와 엄격한 가문의 노선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신하와 백성이 왕을 우러러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즉위하는 즉시 왕이 한 일은 왕좌를 보석과 금으로 호화롭게 꾸미는 일이었습니다.

왕의 권위를 높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는데도 수많은 신하와 백성이 쉴 새 없이 왕을 알현하여 여러 가지 복잡한 사안을 지껄여댔습니다. 아마도 의자에 앉아 있는 왕과 서 있는 신하의 눈높이가 같기 때문에 일어나는 변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왕은 드디어 의자 자체의 키를 높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하와 백성은 거의 날마다 찾아와서 국정의 실수를 지적하며 바로잡기를 조언하거나 개인적인 신세 타령까지 늘어놓았습니다.

왕은 측근에게 의자가 놓인 계단의 층계를 높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왕을 우러러 볼 줄 모르는 신하들의 불찰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이제 신하와 백성은 아득하게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왕을 알현하려면,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우러러 보아야 했습니다. 신하는 낮은 바닥에 서 있었고 왕은 멀고먼 높이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제야 왕을 알현하려는 신하나 백성의 수효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칫하면 복잡하게 얽히고 꼬여 가는 국정을 중지를 모아 슬기롭게 해결하자면 신하들과 면담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문제는 왕궁으로 불려온 신하들의 태도가 왕의 기대와 딴판이었다는 점입니다. 불려온 신하들은 너무나 높은 곳에 앉아 있긴 하지만, 왕과 소통하기를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면 불가피하게 싸움하듯 큰 목소리로 말하고, 얼굴을 붉히거나 어깨를 들썩이며, 과장된 손짓과 발짓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야 했습니다. 신하의 그런 방자하고 무엄한 말버릇과 천박한 제스처는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개한 왕은 신하들을 가차 없이 성밖으로 내쫓아 유배하거나 처형까지도 불사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왕궁을 찾아오는 신하와 백성의 발길이 뚝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왕은 시름에 빠졌지만 그 많았던 신하와 백성의 발길이 끊어진 까닭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시름에 겨웠던 왕은 백성 사이에서 ‘하늘계단’으로 소문난 옥좌에 앉아 졸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혼자서 졸고 나면, 이제 두 사람만 남은 근위병이 계단으로 올라가 왕을 곁부축하여 침실로 모셨습니다. 그 나라에서 대낮에도 조는 사람은 왕 혼자뿐이었습니다.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