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2/정재영 지음/전체 531쪽·각 권 1만3000원·풀빛
20세기 전반 논리실증주의를 주창한 ‘빈학파’가 활동한 오스트리아 빈,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원지가 된 프랑스 파리, 15세기 르네상스 기운이 움튼 이탈리아 피렌체,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활동했던 그리스 아테네….
이 책은 철학자인 저자가 자신이 여행한 유럽의 11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풀어놓는 철학 이야기다. 그는 각각의 도시에 대한 인상과 그곳에서 싹이 튼 철학을 말한다.
첫 여행지는 ‘비엔나커피’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아이스크림을 넣은 커피 아인슈페너와 비엔나소시지의 도시, 빈이다.
저자는 1920년대 태동한 빈학파와 대면한다. 철학자 루돌프 카르납 등이 중심이 돼 빈에서 활동한 이 학파는 ‘모든 참된 지식은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경험주의에 논리 분석을 결합한 논리실증주의를 주창했다.
저자는 빈의 도심거리 링슈트라세에서 “과학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과학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오류에 빠진” 빈학파를 떠올린다.
그는 철학을 비롯한 각 학문들이 개별 분야의 분석 틀에만 함몰돼 외부와 소통하지 않는 것은 이 시대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파리는 68혁명(저자의 표현은 68운동)의 장소다. 1968년 혁명의 진원지가 됐던 파리10대학(낭테르대), 혁명이 확산되면서 시위대의 본부가 된 파리4대학(소르본대)을 찾아간다.
저자는 68혁명을 통해 근대를 공격하며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을 떠올린다.
근대 이성이 비판 정신을 잃고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론’으로 68혁명의 토대를 제공한 프랑크푸르트학파, 진리는 발견되는 것이라는 근대의 대전제와 달리 진리는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본 미셸 푸코의 담론 분석도 얘기한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은 근대 르네상스 철학을 찾는 곳이다. 신의 시각이었던 중세와 달리 인간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가슴에 느껴지는 대로’ 표현한 미켈란젤로를 통해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두 유형을 만난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합리주의 철학과 마주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간시계’였던 이마누엘 칸트가 살았던 독일령 쾨니히스베르크(러시아 칼리닌그라드)를 거쳐 소크라테스의 아테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탈리아 로마를 마지막으로 여행은 끝난다.
저자는 “이 책은 한 시대의 전형(典型)으로서의 유럽 도시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