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설]‘존엄死 인정’ 사회적 논의 더 필요하다

입력 | 2008-11-29 03:04:00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존엄사)’를 인정한 법원의 첫 판결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판결은 뇌사 상태에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환자 가족이 이를 거부하는 병원 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나온 것이다. 1심 법원의 결론에 불과하지만 병원 측의 대응 여하에 따라 대법원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환자 김모(76·여) 씨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받던 중 폐혈관이 터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인공호흡기와 응급심폐소생술을 통해 생명을 연장시키던 병원 측에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치료 중단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헌법 제10조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근거로 ‘생명 유지 치료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강요하고 인간의 존엄과 인격적 가치를 해(害)할 때 환자는 의사에게 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환자의 평소 태도에 비추어 가족과 환자의 뜻이 같을 것으로 추정했다.

네덜란드와 미국의 일부 주(州) 등을 제외하곤 세계적으로 존엄사를 인정 또는 묵인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 인정하더라도 남용 가능성 때문에 엄격한 전제조건을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의 경우 연명(延命) 치료를 원하지 않는 말기환자가 미리 유언을 남기면 의식이 없어졌을 때 치료를 중단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존엄사에 관한 판례가 드물다. 2004년 서울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경제적 이유를 내세운 가족의 뜻대로 치료를 중단한 의사 2명을 살인방조죄로 형사처벌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하급심 판단임에도 우리 사회에 큰 숙제를 안겼다.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는 의학적 법률적 종교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말기 암 등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돕는 안락사보다는 사회적 합의 가능성이 높다. 존엄사가 어떤 경우에 허용될 수 있을지, 누가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 어제 판결의 의미를 확대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