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B기자가 만난 문화의 뜰] ‘이런 젠장맞을 일이’ 펴 낸 소설가 이상문  

입력 | 2008-11-29 08:12:00


“부부 사이는 무촌(無寸)입니다. 촌수를 헤아릴 수 없죠. 자식과의 관계는 일촌이지만, 부부관계는 더 가깝다는 뜻입니다. 서로 상대의 삶 속에 자기가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최근 소설집 ‘이런 젠장맞을 일이’를 펴낸 소설가 이상문(62)은 ‘인간의 삶에서 부부 관계가 가장 가까워야 한다’며 소설에 대한 운을 뗐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안팎으로 힘든 부부들에게 곁에 있는 사람에게만큼은 각별히 충실하라고 충고를 건네는 소설이다.

배우자의 죽음을 겪은 뒤 주인공의 일상을 다룬 ‘이런 젠장맞을 일이’는 부부의 회환과 염치, 사랑 등 여러 감정을 일상의 에피소드로 풀어냈다.

작가가 부인과 사별하며 오랫동안 느낀 아픔이 주제에 절절이 녹아들었다.

1987년 베트남전을 사실적으로 다룬 ‘황색인’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상문 소설가는 꾸준히 일과 글쓰기를 병행해왔다.

1974년 한국제지공업연합회에 취직해 현재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동국대문예창작과 겸임교수, 계간 ‘Pen 문학’, ‘문학과 창작’ 주간을 맡아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26일 신사동 제지연합회 사무실에서 신간 ‘이런 젠장맞을 일이’의 이상문 작가를 만났다.

- ‘이런 젠장맞을 일이’에 들어있는 소설 ‘이런 젠장맞을 일이’와 ‘아욱된장국 끓이기’, 두 소설을 따로 묶어 발간한 이유가 있나요?

“나이 든 사람들은 작은 책을 경박하게 생각해요. 세상이 많이 변해서 두꺼운 책을 고집하는 게 구식이 아닌가 하다가 출판사에서 ‘독자가 적응하기 좋게 책을 묶어봐라’ 해서 묶게 됐어요. 앙증맞다고 할까? 표지가 괜찮은가요? (웃음) 난 나이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40∼60대도 읽을 수 있는 소설, 그런 소설이 별로 없어요. 그 사람들이 읽고 감동하는 소설이면 좋겠습니다.”

- 두 소설 모두 중년부부의 외도, 사랑, 후회 등 부부 관계를 다룬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어떤 위로를 받으면 좋을까요?

“사람이 어떤 일을 당하면 자기 삶을 되돌아봅니다. 사람이 겪는 일 중 가장 충격적인 게 배우자를 잃는 일이고, 두 번째가 직장을 잃는 거죠.

소설 주인공은 당뇨 중증 환자여서 다리를 하나 잃은 삶을 거의 30년씩 살아왔는데도 아내의 삶 속에 들어가 있질 못했어요. 50대 중년이 아내를 잃고서야 삶을 들여다보고 진심을 깨닫고 엉터리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옛말에 ‘논 서마지기 주지 말고, 염치를 물려줘라’라고 그러거든요. 염치없다는 것은 사람의 기본이 전혀 안 돼있다는 거예요. 부부 관계에서 염치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50대 이후 남자들은 ‘염치없음’의 삶을 살고 있죠. 전통적인 가부장 정신인데, 현실에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아내들이 자식한테는 서운한 걸 표시라도 해요. 남편한테는 못하거든요.”

-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다고 하는데, 어떤 면인지, 허구와 체험 사이에서 어떻게 줄다리기를 하시나요?

“제가 아내랑 사별하고, 후회를 많이 했죠. 워낙 직업이 분주해서 아내를 병원에 데리고 간다든가 하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집사람 세상 떴을 때 달리기를 많이 했어요. 집에 가면 견디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그럼 달리죠. 몸을 지치게 만들고 쓰러져 자면 좋은데… 너무 달려서 결국 발바닥이 ‘족저 근막염’에 걸렸어요.

술도 어정쩡하게 취하면 안 돼요. 시내에서 술을 마시면 집에 도착할 때쯤 깨잖아요? 그럼 또 소주에 생맥주를 섞어 마시고 쓰려져 잡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이렇게 살 면 안 된다’ 추스르게 됐습니다.

어느 날 올림픽대로에 새싹이 보이더군요. 작년도 봄이 왔고, 재작년도 봄이 왔는데, 왜 난 봄빛을 보지 못했을까? 어느새 연두 빛이 보이면서 육감이 깨어나는 게… 그야말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앞으로 글도 쓸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글 쓸 때 작가가 택하는 것은 ‘감동’이죠. 실화가 더 감동적이면 그걸 택하고, 실화만 가지고 감동을 살릴 수 없다면 허구를 가미하죠.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험하니까, 독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거든요.”

- 주인공이 반복하는 말 “이런 젠장 맞을 일이”는…

“내 스스로 중얼거리며 자책하는 것이지 상대에게 하는 말은 아닙니다. ‘젠장’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태장’ 매 때리는 거예요. ‘왜 욕지기를 썼나’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남한테는 관대하고, 자기에게는 엄격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거꾸로 하고 살아요.”

-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는 소설은?

“4∼5년 자료 준비를 해온 게 있습니다. 베트남전 때 북쪽으로 지원해 간 사람이 5명 정도 있거든요. 다시 탈출해서 남한으로 와서 살아가는 얘기입니다. 남한이 변해버렸고, 전쟁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겪는 일이죠.

이제 서민들의 삶은 다양해졌습니다. 과거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독재정권에 영합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둘로 딱 나뉘고 중간 허리가 없었습니다. 적과 아군이 아닌, 시민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변화된 세상에 대해 얘기해야 합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사진=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관련기사]난 내 이름이 참 좋아

[관련기사]당신의 조각들’ 타블로와 차 한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