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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김성근 20억 감독시대 열다

입력 | 2008-11-29 08:27:00


SK 김성근 감독(66)은 숱한 팀에서 경질당한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쪽이다.

마치 히말라야 고봉을 정복하는 등산가를 연상케 하듯 “내가 아직 안 맡아본 팀은 어딘가? 한화하고 롯데만 남았나?”라고 말하곤 한다.

뼈에 사무칠 ‘해고의 역사’일 텐데 김 감독이 늘 당당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나는 언제나 내 소신을 지켜왔다는 자부심의 표현이고, 또 하나는 그만큼 많은 팀을 맡아봤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능력을 증명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음지인”이라 칭하는 김 감독의 잡초 인생이 SK를 맡은 말년에서야 영광의 역사로 바뀌었다.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 통산 1000승, MVP 제자 배출에 이어 28일 3년 재계약으로 이어졌다. 26일 일본 고지에서 재계약을 완료한 SK는 이틀 뒤 “김 감독과 3년간 총액 20억원(계약금 8억, 연봉 4억)에 재계약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성근 재계약의 4가지 이정표

김 감독 재계약은 프로야구 역사에 여러 방면에서 족적을 남겼다. 첫째, 김 감독은 OB-태평양-삼성-쌍방울-LG를 거치는 동안, 단 한 번도 재계약을 완료하지 못했는데 SK에서 과거 2년에다 향후 3년을 보장받아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했다. 쌍방울 시절 2년 재계약을 이뤘지만 중도 퇴진했다.

둘째, 프로야구 최초로 ‘감독 20억원 시대’를 열었다. 평소 지바롯데 보비 밸런타인 감독처럼 한국에도 가치를 인정받는 감독이 나와야 한다는 김 감독의 지론이 관철된 셈이다.

셋째, 김 감독이 2011년까지 계약을 무사히 만료하면 한국 나이로 프로야구 사상 첫 ‘70대 감독’이 탄생하게 된다. 이미 최고령 감독인 김 감독은 야구 원로로서 야구계 현안에 대한 고언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넷째, 김 감독은 야구 역사상 이례적으로 재계약 협상을 두 달 이상 끌었다. SK 신영철 사장은 9월 말 일찌감치 재계약 의사를 선언했으나 감독 계약기간 만료일인 30일을 불과 이틀 남겨두고서야 합의에 이르렀다.

김 감독은 “이틀 남겨 놓고 했잖아”라고 했지만 큰 이견이 없으면 구단 안을 감독이 바로 받는 보편적 재계약 협상에 비해 이례적 장기전이었다.

○SK, 김성근 재계약의 과정과 배경

SK의 기본 방침은 시종일관 ‘3년 계약에 최고대우 보장’이었다. 그러나 최고액이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내부적으로 고심을 거듭하다 20억원으로 낙착했다. ‘20억’이란 상징적 숫자를 확정해줘 김 감독의 체면을 세워줬다. 대신 김 감독이 요구했던 옵션은 계약서에서 소멸됐다.

신 사장은 재계약 방침 선언 이후 아시아시리즈 전까지 김 감독과 두 차례 회동했다. 그리고 26일 고지로 날아가 합의를 도출한 뒤 27일 귀국했다.

신 사장은 “감독님의 가치를 고민했다”란 한마디로 최고대우의 이유를 설명했다. 신 사장은 2006년 겨울 첫 계약 무렵에도 일본 지바로 날아가 김 감독 영입을 판단했는데 또 다시 고지로 넘어가 독대한 ‘삼고초려’ 끝에 재계약을 끌어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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