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과 실물 경제 침체 등의 악재가 산적한 가운데 돈줄이 막힌 가계와 기업들이 올해 연말과 내년 1분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빚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30일 금융계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발행한 은행채 21조2000억 원어치의 만기가 내년 1분기에 돌아온다. 이는 올해 1분기(18조4000억 원), 4분기(20조7000억 원)보다 많은 규모다.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도 내년 1분기 3조9000억 원치 만기가 돌아온다. 이 또한 올해 1분기(3조7000억 원)이나 4분기(3조 원)보다 많다.
2005년과 2006년 큰 폭으로 증가한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만기도 속속 돌아오고 있다. 9월 말 현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383조6000억 원. 이중 주택담보대출이 234조6000억 원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일시 상환방식의 대출 만기 금액이 내년 40조~5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거치기간이 끝나 내년에 원금을 갚아야 하는 대출도 33조5000억 원에 이른다.
갚을 빚은 '첩첩산중'인데 돈 나올 곳은 '바늘 구멍'이다.
10월 은행채와 회사채 발행액도 9월보다 각각 23%, 27.7% 감소했다. 은행들은 연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현재 10%대에서 11~12%로 끌어올려야 할 상황이어서 대출에 소극적이다. 주택대출 금리도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연 6~7%대다.
국내 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올해 9월말 현재 0.97%로 6월말보다 0.18%포인트 상승했지만 2003년 말(2.0%)보다 아직 낮다. 미국 상업은행의 연체율은 3.64%에 이른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과 실물경제 침체가 본격화하면 자산 가치 하락과 소득 감소로 연체율이 급증할 수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금리를 낮춰 자금 수요와 부채 부담을 최대한 줄이고 기업들이 은행 대출 외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우회 통로'를 마련해줘야 한다"며 "정부가 가계와 산업의 고통 분담을 유도하려면 앞으로 1~2년간 실물 경제 침체 속도를 늦추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선제적인 종합대책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