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그제 외교안보팀 인선을 발표하면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가 주도할 주요 외교 목표의 하나로 ‘핵무기의 북한과 이란 확산 차단’을 꼽았다. 우리가 듣고자 했던 발언이다. 오바마가 경쟁자였던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기용한 것보다 북핵 해결을 핵심 외교 현안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뉴스다.
유명환 對힐러리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국무장관은 힘이 세다. 힐러리는 퍼스트레이디를 지낸 첫 국무장관으로서 어느 누구보다 더 강력한 장관이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힘센 장관이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 아래 집중적으로 매달린다면 북핵 해결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진다.
미 국무부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는 ‘국무장관은 임무 수행을 위해 지구촌 어디라도 찾아간다’는 글귀가 자랑스럽게 떠있다. 국무부는 외교 총사령관인 국무장관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결과도 통계와 함께 상세히 공개한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2005년 1월 취임 이후 올 9월까지 모두 83개국을 순방했다. 그가 공무로 해외에서 보낸 시간의 누계는 88일을 넘어섰다. 라이스는 동맹국인 한국을 평균 이상으로 찾았다. 지금까지 6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미 국무장관의 파워는 외교 현안의 결정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한반도 문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003년 8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이고리 이바노프 당시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중국-북한 3자회담을 한국과 일본도 넣어 5자회담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을 설명했다. 이바노프가 “도대체 러시아를 배제한다는 아이디어를 누가 냈느냐”고 따지자 파월은 재빨리 ‘러시아를 포함한 6자회담’으로 계획을 변경했다(찰스 프리처드 저 ‘실패한 외교’).
세계적 현안 해결을 주도하는 미 국무장관과 접촉해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우리 외교통상부 장관의 주요 임무다. 양국 장관 사이에 개인적 친분이 있다면 윤활유처럼 양국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빌 클린턴 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한국 측 카운터파트인 유종하 외무부 장관을 ‘선배’로 모셨다. 유엔대표부 대사 시절 만난 두 사람이 친분을 쌓으면서 나이가 한 살 많은 유 장관이 선배가 된 것이다. 올브라이트는 1997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회견장에서 유 장관을 또렷한 한국말로 선배라고 불렀다.
유쾌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파월은 장관 재직 시절 한국 외교장관을 만난 뒤 짜증을 냈다. 한국 장관이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다시피 하면서 재미없게 대화를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파월은 다시는 그 장관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다행스럽게도 그의 장관 재임은 길지 않았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힐러리 내정자와 특별한 친분이 없다고 한다. 유 장관이 외교부 북미국장과 주미공사를 지내기는 했지만 퍼스트레이디와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힐러리와 대면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앞으로 공식 접촉을 통해 신뢰를 쌓는 수밖에 없다.
힐러리 내정자는 잘 알려진 인물이고 그가 펼칠 대(對)한반도 정책을 가늠할 만한 단서들도 많다. 오바마 당선인을 정점으로 한 차기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결정 과정에서 힐러리의 위상과 역할을 파악하는 것은 외교부가 해야 할 기본 업무다.
북핵 이젠 끝내자
게다가 북핵 문제는 한미 공통의 숙제다. 노무현 정부가 5년 동안 매달렸으나 매듭을 짓지 못해 이명박 정부가 짐을 물려받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재임 8년 중 6년을 북핵과 씨름했으나 해결하지 못하고 오바마 정부에 넘긴다. 한국도 미국도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국정운영과 외교에 계속 걸림돌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 정도의 공감대라면 소소한 견해차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으로 충분하다.
대미(對美)외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북한 정권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워 보인다. 유 장관이 힐러리 내정자에게 책임지고 북핵 해결에 종지부를 찍자는 ‘담대한 약속’을 제의하면 어떨까.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