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팅겐대 쿠르트 폰 피구라 총장(왼쪽)이 서울대 이장무 총장과 1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 의대 암연구소에서 만나 대담을 나누고 있다. 양교 총장은 대학 국제화와 법인화 등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원대연 기자
“대학 법인화, 학문의 자유 위해서도 필요”
“젊은 학자들의 과감한 연구에 대해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초학문은 기다려야 성과가 나오고 그래야 노벨상 수상도 가능한 것이죠.”
1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 의대 암연구소에서 만난 독일 괴팅겐대 쿠르트 폰 피구라 총장과 서울대 이장무 총장. 이들은 기초학문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대학의 지원과 기다림”을 꼽았다.
서울대와 괴팅겐대가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피구라 총장은 이날 이 총장과 기초학문 육성, 대학 법인화, 학문의 국제화 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 기초과학 강세의 비결
▽피구라 총장=20세기 초반 괴팅겐대의 학문적 성취는 학문의 자유, 연구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 유망한 젊은 학자들을 대거 유치했기에 가능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젊은 시절, 보른과 프랑크의 세미나를 듣고서 우리 학교 학생이 됐다. 1930년대 나치의 집권으로 학문의 자유가 사라지는 등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속적으로 연구를 지원해 1980년대 다시 괴팅겐대의 학문적 성과가 회복됐다. 이와 함께 젊은 학자들이 추진하는 위험한 연구과제에 대해 대학 당국이 믿고 기다려주는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
▽이 총장=전적으로 동의한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젊은 학자들이 도전적으로 실험과 연구에 헌신할 수 있도록 대학이 지원해야 한다. 최근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뤼천을 서울대 석좌교수로 모시면서 그에게 수상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크뤼천 교수는 “연구진이 상상력을 갖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 덕분이었다”고 답했다. 서울대도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 법인화 후 비용 줄고 효율성 커져
▽피구라 총장=대학 법인화는 학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 괴팅겐대는 과거 어떤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해도 정부에 가서 일일이 확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2003년 법인화 이후부터는 의사 결정이 훨씬 주체적으로 바뀌었다. 의사 결정 과정이 단축되면서 비용은 줄고 효율성은 높아졌다. 물론 법인화는 대학 스스로 그만큼 책임을 더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학내 구성원들에게 이전보다 더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
▽이 총장=지난해 세계대학총장포럼에서 해외 명문대 총장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서울대가 국립대의 한계 때문에 유연한 정책을 펴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성공적인 대학 법인화는 국가가 충분한 재정 지원을 해줘야만 가능하다.
▽피구라 총장=옳은 말씀이다. 괴팅겐대도 법인화를 통해 행정 절차의 독립성은 이뤄냈지만 아직 재정적 독립은 충분히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법인화를 통해 조직의 정체성을 얻을 수 있었다. 서울대의 경우 한국 안에서 지위가 워낙 확고해 자기 정체성이 강하지만 독일은 대학이 대부분 평준화돼 있어 이런 대학별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과거에는 대학 간 차별화가 금기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법인화 이후에는 대학의 자율과 책임 아래 차별화가 가능해졌다.
▽이 총장=말씀하신 대로 법인화는 장점이 많다. 하지만 추진과정에서 저항도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일례로 교직원들은 공무원 지위를 잃지 않을까, 교수들은 기초학문이 쇠퇴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을 우려하기도 한다. 따라서 서울대는 법인화에 있어 여러 모형과 사례를 살피면서 이런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논의해 나가야 한다. 법인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교내 학생들과 교수들을 설득하고 정부와 국회, 다른 국립대와도 협의할 것이다.
○ 대학 국제화는 학문 발전의 필수
▽피구라 총장=훌륭한 과학 연구는 국제적으로 구성된 네트워크에서만 가능하다. 국제적 연구 활동을 통해 다른 지역의 두뇌들이 서로 교류해야 한다. 학생들이 외국으로 나가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불어 교수진의 국제화 차원에서 전체 교수의 20%는 외국인 교수로 채워져야 한다. 이 점에서 괴팅겐대는 외국인 교수 비율이 6%에 불과해 이를 개선하려고 한다. 앞으로 자국에 한정된 연구를 해서는 미래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달 서울에 개설한 괴팅겐대 한국사무소가 두 대학의 학문 교류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총장=서울대는 내년까지 100명의 외국인 교수를 임용하고, 20명의 해외 석학을 유치해 국제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미 크뤼천 교수와 필즈메달을 수상한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 등 해외 석학을 영입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600여 개에 이르는 해외 교류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며, 외국 명문대와 다양한 공동 강의 및 복수 학위제를 운영하고 있다. 괴팅겐대는 의학과 자연과학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만큼 양교가 학문적 교류를 더 확대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괴팅겐대:
1737년 개교한 이래 노벨상 수상자를 44명이나 배출했을 정도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세계 유수의 명문대. 막스 보른, 제임스 프랑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 현대 물리학의 대가들이 모두 이 대학 출신이다. 2003년 독일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성공적인 법인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정리=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