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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청준 선생 마지막 장편 ‘신화의 시대’ 출간

입력 | 2008-12-04 02:56:00


7월 31일 타계한 소설 ‘서편제’의 작가 이청준(사진) 씨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장편소설 ‘신화의 시대’(물레)가 3일 출간됐다.

소설 ‘신화의 시대’는 작가가 생전에 “살아서 완성할 마지막 소설”이라 불렀던 장편. 2001년부터 10년에 걸쳐 3부작으로 완성할 것을 목표로 했으나 1부만 끝내고 2부는 완성치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 나온 한 권짜리 ‘신화의 시대’는 1부에 해당하며, 2006∼2007년 계간지 ‘본질과 현상’에 4회에 걸쳐 발표된 것을 다시 책으로 엮었다.

미완성이라지만 ‘신화의 시대’는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다. 소설은 1910년부터 1932년까지 작가의 고향인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일명 ‘참나무골’이 배경이다. 세 편으로 구성된 소설은 작가의 선대가 살았던 고향의 떠돌이 여인 ‘자두리’를 다룬 1장 ‘선바위골 사람’과 작가의 조부를 모델로 한 인물 이인영의 집안을 그린 2장 ‘역마살 가계’, 어머니로 짐작되는 외동댁이 등장하는 3장 ‘외동댁과 약산댁’ 등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다룬다.

이청준 작가의 평전을 집필 중인 문학평론가 이윤옥 씨는 “작가는 1부에서 자신 윗대 집안, 마을 이야기를 다룬 뒤 2부에서는 친형을 모델로 한 종운과 1부 마지막에 등장해 불꽃같은 삶을 살아가는 태산이란 인물을 다룰 계획이었다”면서 “마지막으로 3부는 그 둘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 전체 3부작을 완성하려 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창작노트를 참조하면, 2부에 나오는 종운과 태산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사회학적 상상력을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종운과 정치가적 기질을 가진 태산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을 다루려 했다. 이후 3부에서는 작가가 “삶을 베낀다”고 표현한, 두 삶의 궤적을 함께 따르려 했던 자신의 모습을 다룬 이야기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급작스레 세상을 뜨며 “이 소설의 미래 서사는 상상의 몫을 남기는 신화로 남아버렸다”(소설가 이인성 씨).

이윤옥 씨에 따르면 작가는 생전에 이 소설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신화 소설’이라 부르며 이 씨에게 자신의 사후에라도 세상에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이나 연유를 상세히 설명해줄 것을 부탁했다.

작가가 남긴 일기장에도 ‘2004년 5월 20일 신화소설 1부 초고 완료’ ‘5월 24일 신화소설 2부 시작’ 등 계속해서 이 소설에 대해 언급한다. 작가의 가계와 친형은 물론 자신의 이야기를 다룰 계획이었기에 성장소설이나 자전소설로 간주하기도 했다.

특히 소설 제목에도 쓰인 ‘신화’는 다중적 의미를 지닌다. 작가가 말하는 신화는 기존 개념과 차이가 있다. 작가가 그려낸 신화의 공간은 신만이 거처하지 않는다. 사람과 신이 어울리고, 낮과 밤이 엇갈리며, 전근대와 근대가 혼재된 세상이다. 이 때문에 소설은 “신화와 현실, 정한(情恨)의 세계와 반성의 세계”(문학평론가 정과리 씨)가 겹쳐진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윤옥 씨는 “작가가 ‘무당소설’이라 불렀던 전작 ‘신화를 삼킨 섬’(열림원)에서도 신을 인간과 동일한, 때로는 훨씬 못한 존재로 그리곤 했다”면서 “신과 인간이 어울려 감싸고 포용하는 ‘넋의 차원’인 삶을 신화라고 작가는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