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9일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12km 떨어진 곳에서 방사능 낙진을 맞았던 당시 17세의 소년 오사무 시모무라는 1960년 도미해 평소에 가졌던 궁금증을 프린스턴대에서 파고들었다.
해파리에서 발광을 나타내는 단백질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고 1만 마리 이상의 해파리를 잡아서 발광과 형광을 나타내는 단백질을 정제한 후 34세이던 1962년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였던 마티 챌피는 세미나에서 녹색형광단백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어 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대장균과 예쁜꼬마선충에 발현시키면 역시 녹색형광을 낸다는 사실을 1994년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 로저 첸은 돌연변이를 이용해 녹색형광단백질을 다른 색깔을 나타내는 형광단백질로 전환시키고 42세가 되던 1994년 발표한다.
오사무 시모무라, 마티 챌피, 로저 첸은 녹색형광단백질을 발견하고 이를 생체 내 단백질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공로로 올해의 노벨상을 공동수상했다. 이들은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에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 연구하던 중에 발견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을 살펴보면 대부분 30대나 40대 초의 업적이다. 인간의 창의력이 이 시기에 최고조에 이른다는 점을 입증한다.
6년간 미국 국립보건원의 원장으로 재직하다가 지난달 퇴임한 자후니 박사가 중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 중 하나는 국립보건원 연구비를 처음 신청하는 사람, 즉 신진 과학자에게 우선권을 준 것이다. R01이라는 연구비가 대표적인 것으로 5년간 약 10억 원을 지급한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보유한 미국이지만 창의적인 연구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국내 대학과 연구소에 신규 채용되는 젊은 과학자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러나 이들이 신청할 수 있는 연구비 종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신진 교수 연구지원사업’이 대표적인데 대부분 1년만 지원하고 지원 금액은 연간 2000만∼3000만 원이다. 1년간 지원한 후에는 논문을 1편 이상 내도록 한다.
창의력 넘치는 신진 과학자가 이 연구비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없다. 액수가 부족할뿐더러 당장 성과가 나는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국내 생명과학 연구비는 개인단위보다는 그룹단위(무슨 무슨 사업단이 다 여기에 속한다)에 많이 투자한다. 신진 과학자는 연구비를 위해 기존의 그룹단위 연구팀에 소속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실험을 하기보다는 연구비를 주는 그룹단위를 위한 실험을 하는 경향이 많아진다. 결국 본인이 하고자 했던 실험을 하지 못하고 그룹단위의 구미에 맞는 실험을 하면서 창의력이 풍부한 시절을 다 보내고 만다.
신진 과학자에게 최소 5년간은 연구비나 논문 발표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현재의 연구비 제도를 유지할 경우 한국 과학자가 언제쯤 노벨상을 받게 될지 모른다.
최석용 전남대 의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