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밥 먹고사는 나도 요즘 신문을 보면 답답해진다. 하루하루가 겁날 정도로 살기 힘들어지는데 정치권은 왜 늘 저러는지, 정권이 바뀌나 안 바뀌나 왜 거기서 거기인지 신문을 보다 욕 나올 때가 많다.
“대통령만 바뀌면 해결될 텐데 결국 리더십이 문제”로 끝나는 결론은, 틀리지 않기에 더 짜증난다. 나도 같은 소리로 독자를 고통스럽게 해선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짜낸 고육책이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드리는 거다.
국민에겐 “상황이 너무 잔인”
지난 30년간 단연, 줄기차게,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국가로 덴마크가 꼽힌다. 국민소득 국가경쟁력 복지제도가 뛰어난 건 사실이다. 그래도 평등지수는 물론 유전자로 쳐도 네덜란드나 스웨덴 핀란드와 별 차이가 없는데도 덴마크 사람들은 유독 행복하다.
지난해 의학저널 BMJ가 전한 이유는 뜻밖에 단순했다. 기대치가 낮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 행복의 ‘비밀’을 적용하면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게 없어진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은 농수산물 시장을 찾았다가 자신을 붙들고 우는 노점상 할머니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이때 꼭 열 달 전 설 경기를 살피다가, 당시 당선인이었던 그를 붙잡고 무조건 울었던 또 다른 할머니를 떠올리며 열 받으면 나만 손해다. 대통령이 “지금은 세계가 다 어렵다”고 말했듯이 당장의 경기부침 사이클에 대통령의 힘이 먹혀들긴 어렵다.
물론 오비이락(오바마는 뜨고 이명박은 떨어진다)이라는 말처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같이 경제팀을 잘 짰더라면 우리 경제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덴마크의 교훈에서 보듯 남과 비교해 기대수준을 높이는 건 행복과 상극이다. 게다가 우리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이 BBK 사기사건의 주역인 김경준을 한때 유능한 금융인으로 알았던 수준이다. 박근혜 하나 끌어안지 못하는데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정치인도 사람이어서 인센티브에 반응하게 돼 있다. 정치인에게 이데올로기나 정당보다 중요한 건 표이고, 어떤 이에게는 돈이다. 특히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같은 거창한 소리를 할 땐 즉각 기대를 접고 지갑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좌파든, 우파든 마찬가지라는 건 5년 전 이맘때 신문을 보면 안다.
2003년 12월 4일 국회는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법안을 재의결했었다. 석 달의 특검 결과 한나라당과 노무현 후보 캠프가 기업에서 긁어모은 불법 대선자금이 각각 823억2000만 원과 113억8700만 원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은 당사와 천안연수원 등 10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국가에 헌납했다. 사라진 열린우리당이든, 이름만 바꾼 민주당이든 노 정권은 그 돈을 떼먹은 상태다. 2006년 의원들의 세비를 모은 ‘단돈 2억 원’을 백혈병 어린이 환자에게 기부했을 뿐이다.
끔찍이도 도덕성을 강조했던 자칭 진보정권이었다. 지금 노 측근 게이트에서 터져 나오는 의혹만도 수백억이다. 노 전 대통령이 증오했던 ‘많이 배우고 출세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형님’이든 권력 근처에 있으면 국민이 밥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쯤 되면 정치나 정치인에 대한 기대는 한없이 낮추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기대는 낮추고, 시장엔 맞추고
세상에 대한 기대는 낮을수록 행복해진다 치자. 그렇다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낮춰선 요새 같은 세상에 밥 먹고살기 힘들다.
서바이벌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요즘 구박받는 시장의 법칙에서 나온다. 바로 시장이 요구하는 걸 제공하는 거다. 정치인은 국민이, 기업은 고객이, 직장인은 직장이 원하는 걸 해내는 것 이상 없다. 성과야 어떻든 ‘경제 대통령’을 공약해 당선된 이 대통령이 이를 입증한다.
민주주의는 선거 때만 위력을 발휘할 뿐이라 해도 없는 것보다 낫다. 투표시장이 열리고 판이 바뀌면 단죄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잠깐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 그 사이에 하는 일 없이 봉급 받는 그들에게 바치는 내 세금이 너무나 아깝지만.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